◎「차부품수입」 20개월간 대립의 연속/미 301조 발동에 일 형식적 수용숨막히는 마라톤 협상끝에 95년 6월 극적으로 타결된 미일 자동차교섭은 일본에는 힘겨우면서도 의미가 있었던 역사적인 「무역전쟁」으로 기록되고 있다.
미일 양국은 93년 9월 미일 포괄경제협의의 일환으로 자동차 및 부품에 관한 협상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불꽃튀는 대립의 연속이었다. 미국은 일본측에 자동차 부품등의 구입계획에 관한 「수치목표」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라고 요구한 반면, 일본은 미국측의 요구가 시대에 뒤떨어진 「관리무역」의 표본이라고 거부했다. 그러자 미국은 미 통상법 슈퍼301조의 발동을 무기로 삼아 일본측을 위협했지만 일본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일본으로서는 여기서 양보하면 시장개방 압력이 다른 분야로 잇따라 확대된다는 위기의식 때문에 결사적으로 대항했다. 결국 미국은 95년 5월 슈퍼 301조에 의거 일본의 대미 수출 자동차에 대해 1백%의 관세를 부과한다는 내용의 무역 제재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일본도 지지않고 세계무역기구(WTO)에 미국을 제소함으로써 맞대결을 펼쳤다.
정면으로 달리던 충돌 직전의 이들 두 열차가 극적으로 멈춘 것은 95년 6월28일. 당시 하시모토 류타로(교본룡태랑) 통산장관과 미키 캔터 미 무역대표부 대표는 제네바에서 회담을 열고 합의안을 도출한 것이다. 「외국산 자동차 부품의 수입을 확대하기 위해 일본 자동차업계는 자주적인 경영계획을 발표하고 국제화와 현지화를 추진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양국간의 합의는 외견상 미국의 요구에 대해 일본이 수락하는 형식으로 돼있어 미국의 승리로 막을 내린 듯했다.
그러나 합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일본은 아무런 손해를 본 것이 없었다. 합의문에는 일본이 미국자동차의 수입을 늘린다는 언질이 없을 뿐 아니라 일본의 자동차 업체들이 이전부터 추진하고 있었던 미국에서의 현지생산 등을 약속했을 뿐이다.
이렇게 막을 내린 미일 자동차교섭은 일본의 대미 무역협상에 있어서 역사적인 한 페이지를 장식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도쿄=김철훈 특파원>도쿄=김철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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