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률전초현실주의적 인물화·뿌리기기법 등 다양한 실험·2일부터 추제화랑/김천일전세필로 그려낸 풍경화·깔깔하고 팍팍한 맛 구현·12일까지 금호미술관양화가 박항률(47)씨와 한국화가 김천일(46·목포대 교수)씨. 서로 다른 작업을 하는 두 사람이지만 자기어법을 찾는 다양한 탐색을 거쳐 마침내 우리의 고대벽화와 신화에서 미학의 근원을 캐내고 있다.
박씨는 2∼31일 추제화랑(02―738―3583), 김씨는 12일까지 금호미술관(02―720―5114)에 이어 11월7∼16일 광주 신세계갤러리(062―360―1630)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서울대 미대 1년 선후배 사이지만 양화가와 한국화가, 인물화가와 산수화가라는 차이가 두드러진다. 하지만 박항률씨의 초현실주의 인물화와 김천일씨의 산수는 그 독특한 작풍이 눈길을 잡는다.
박항률씨의 인물화를 보자. 추상작업을 하다 93년부터 인물화로 옮긴 그의 작품에서는 초현실주의적 냄새가 물씬난다. 「비밀스런 이야기」시리즈는 무표정한, 얼핏 명상적으로 보이는 소녀, 소년의 얼굴이다. 그것은 열여덟에 죽은 곱사등이 누이의 처연한 모습이기도 하고 어느 산사에서 스친 동자승의 표정같기도 하다. 그리움과 꿈, 죽음과 삶에 관한 신화의 재현이다.
이런 주제를 구현하기 위해 그는 다양한 실험을 시도한다. 정밀한 인물화의 배경에는 때로는 스텐실기법이 사용돼 실재와 환상의 경계를 드러내주고 뿌리기기법은 색의 겹침 효과를 준다. 한지를 이용한 찍어내기와 닦아내기기법은 때론 마티에르를, 때론 아크릴화에 물의 흔적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런 작법의 탐구를 거쳐 그는 이제 우리 삶과 철학의 원형인 고대신화에 도전한다. 5년에 걸친 부지런한 인물화의 탐구가 이제 새 도약을 약속하고 있다.
김천일씨의 한국화 「사계」전은 영암 월출산 월하리의 사계와 목포시 소반동의 풍경을 주로 담고 있다. 흐벅지고 질펀한 중국화의 맛(작가는 이를 「임리하다」고 표현했다) 대신 모시의 깔깔하고 팍팍한 맛을 내고 싶다는 김씨는 그래서 돌가루를 갈아 쓰는 석채를 안료로, 닥종이로 만든 전통한지를 바탕으로 이용한다. 세필로 그려낸 풍경에는 연두색도 한 빛이 아니다.
고령토로 바탕색을 그리고, 여기에 많은 종류의 연두빛을 겹쳐 칠하기를 수차례. 그래서 그의 그림을 들여다 보면 보일듯 말듯한 밑색이 수없는 붓질과 인내의 시간을 엿보게 한다. 망원경까지 들고가 현장에서 그림을 그려야 직성이 풀리는 괴팍함 때문에 일년에 대여섯점 밖에 그리지 못한다. 하지만 옛 문헌을 뒤지고, 벽화와 민화를 연구해 「전통색」을 구현하려는 그의 그림에서 우리 색은 점점 살아나고 있다.<박은주 기자>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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