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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신념과 전략/채서일 고려대 교수·경영학(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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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신념과 전략/채서일 고려대 교수·경영학(한국논단)

입력
1997.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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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마저 깨뜨리는 ‘카멜레온’ 정치판/국민의 혜안으로 엄격히 심판하자얼마전 일본 축구를 평정한 월드컵 예선 소식에 오래간만에 신문을 보며 웃을 수 있었다. 대견한 박찬호, 선동렬 선수의 소식도 반갑기 그지없다. 그러나 정치면으로 눈을 돌리면 우울하기만 하다. 모두가 한숨을 쉬고 분통을 터뜨리며 걱정에 휩싸인다. 많은 신문의 기라성같은 논설위원과 칼럼니스트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정치권의 각성을 요구하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런 국민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선을 향한 정치판은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현재 우리 정치인, 특히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두가지는 신념과 전략이다. 신념과 전략은 정치인이 스스로를 내보이는 통로이고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근본이 된다. 이것이 없는 정치인은 그야말로 흘러나오는 떡고물을 주워 먹으려고 권력의 주변을 어정대는 헛껍데기이며 정치판을 혼탁케하는 역사적 범죄자이다. 한낱 필부의 인생에서조차 신념의 중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정치인에게 신념은 내내 침묵하다가 선거때만 나타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유세장에서, TV토론회에서 스스로 거짓말인지, 참말인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내뱉는 그런 무성한 말잔치가 아니다. 그 사람의 순간순간의 정치적 판단과 움직임에서 항상 나타나는 것이다.

신념에 위배된다면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단호히 거절하는 용기가 바로 신념이다. 경선에 탈락했다면 깨끗이 결과에 승복하고 다시 한팀이 되어 승자를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신념의 모습이다. 당장 출마할 때 얻어지는 눈앞의 정치적 이익에 어두워 탈당을 하고 세력을 규합하여 다시 대선후보로 나서는 것은 선거결과의 승복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약속조차 깨뜨리는 옳지 않은 일이다. 자신이 경선에 승리하였다면 다른 주자들이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는가. 당내에 남아있으면서 이쪽 저쪽 눈치를 살피는 이들이나, 하나로 힘을 합쳐주지는 않고 팔짱을 끼고 앉아있는 이들을 보면서 애초에 이들에게 올바른 신념을 기대했던 것이 무리였다는 생각이 든다.

국민들은 이런 류의 정치적 조삼모사를 많이 겪다보니 「정치는 원래 그런 것」이라는 체념에 빠져있다. 그러나 원래 정치는 그런 것이 아니다. 굳건한 신념과 높은 능력을 갖춘 인재들이 뜻을 펴는 것이 정치이다. 국가의 진정한 주인이자 엄격한 심판관으로서의 국민의 혜안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진정한 정치적 신념과 「일단 대통령이 되고 보자」는 가짜 신념을 구분하는 것이 우리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정치에서 필요한 전략은 신념과는 달리 절대적인 옳고 그른 가치관이 개입되지 않는 정책의 큰 방향이다. 예를들어 진보주의와 보수주의, 시장자유원리와 정부개입 등 그 정당이나 정치인이 차별적으로 내세우는 기본 정책의 흐름이다. 여기에는 절대적인 옳고 그름이 없고 국민들은 그 나름대로 찬반 여부를 결정하여 그 후보 또는 정당을 지지하게 된다.

이 전략을 수립하고 수행할 때 정치인들이 범하기 쉬운 오류는 이것도 저것도 다 하겠다고 욕심을 내는 것이다. 이런 욕심은 당장은 많은 지지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끝내 어느 한 쪽도 만족시키지 못한채 실패하기 쉽다. 전략적 일관성은 성숙한 정치인의 참모습이다.

어느 기업이 늘씬한 20대 초반의 아가씨들을 위한 최첨단의 유행옷을 만들어 팔았다. 그 기업은 처음 목표한대로 젊은 아가씨들에게 많은 인기를 누리면서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그러나 젊은 아가씨들처럼 멋진 옷을 입고 싶어하는 뚱뚱한 아주머니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커다란 사이즈의 옷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뚱뚱한 아주머니들이 입고 다니는 옷을 멋쟁이 아가씨들이 입고 싶을 리 없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개혁주의자 혹은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며 요란하게 출발했다가도 시간이 지나면서 반대 성향의 유권자의 지지까지 조금 더 받아볼까 하고 어정쩡한 입장을 취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정계에서 간간이 터져나오는 모든 정치인들이 「내가 진짜 보수」임을 강변하는 기묘한 논쟁이나 때에 따라 편리한 대로 정책전략을 바꾸는 카멜레온 같은 변신묘기를 보는 국민들의 심정은 착잡하다.

기대 수준 이하의 정치인들에게 교훈을 주는 것은 국민들의 책임이다. 올바른 신념과 비전있는 전략을 갖추지 못한 후보를 대통령자리에 올려놓고 고생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스피노자는 『국민은 군주의 관점에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대선을 자신이 속한 소집단의 두령을 뽑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국민의 올바른 선택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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