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기 인도선 약제로 아연 이용고대 인도의사들은 비만, 나태, 과식, 단 음식 등이 당뇨병과 관계가 있으며, 특히 갓 수확한 곡물과 콩류, 육류가 문제를 일으킨다고 여겼다. 따라서 식사조절과 설사, 구토 등으로 배설토록 하는 것이 주요 처방이었다. 규토 성분을 함유한 히말라야산 역청(천연산 탄화수소 화합물)제제 등 몇가지 약이 치료제로 쓰였으며, 훨씬 뒤인 13세기 무렵에는 아연이 주요한 약제로 추가됐다.
그러나 이런 베다의학의 전통은 제대로 후세에 계승되지 못했다. 4, 5세기 부터는 불교의학의 영향으로 당뇨병의 진단과 치료가 애매모호해졌고, 11세기 무렵에는 이슬람 정복자들에 의해 베다의 지혜는 거의 단절되다시피 했다.
고대 그리스 의학에서도 당뇨병을 나타내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2세기에 활동한 카파도키아 지방 출신의 아레타애우스는 당뇨병을 그리 흔하지는 않지만 「불가사의한 병」이라면서 「살점과 사지가 소변으로 녹아내리기 때문에 생긴다」고 했다.
그는 병이 생기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리지만 일단 병에 걸리면 「급속도로 몸이 녹아내려 머지않아 죽음에 이르는 병」이며, 「죽기까지는 환자가 오심(구역질), 불안, 심한 목마름으로 고통에 시달린다」고 묘사했다.
아레타애우스는 환자의 소변이 달다는 점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섭취한 음료보다 배설한 소변의 양이 많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한 점으로 미뤄 당뇨병의 특성과 경과를 어느 정도 파악했던 것으로 생각된다.<황상익 서울대 의대 교수·의사학>황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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