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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입력
1997.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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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건전한 ‘배설구’가 필요/불안·분노 등을 잊기위해 쾌락주의·이기주의 만연/감정을 느끼고 다루는 세련된 대인관계 훈련 시급살아가면서 앞으로 다가올 위협이나 위험을 미리 예측할 때 인간은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 자신의 이상이나 바라던 소망이 현실에서 크게 어긋나도 우울을 경험한다. 내가 몸담고 있는 직장에 감원바람이 불 낌새가 보이면 불안해지고, 더 이상 승진이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빼앗긴 채 명예퇴직으로 물러나게 되면 심한 우울증에 빠지는 게 좋은 예이다. 그래서 흔히 불안은 미래형의 감정이고 우울은 이미 일이 일어난 후에 생기는 과거형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대인은 불안과 우울을 별개의 감정으로 느끼지 않고 이를 동시에 체험한다. 감정 표현도 불안과 우울을 구분해서 하지는 않는다. 이는 주변의 사건들이 너무 빠른 속도로 연쇄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과거 몇년동안 정신없이 경제성장에 치중했다. 이 때문에 흔히 「거품」이라고 표현되는 허구들이 사회에 많이 존재한다. 또 이런 거품들이 여기저기서 꺼지는 위협을 매일 당하거나 목격하며 살고 있다. 고속철도의 부실공사, 잦은 도시가스 폭발, 정부 기업은 물론 학원에서까지 노출되는 부정부패, 문어발식 확장만 일삼는 일부 대기업, 금융기관의 부실 등이 언제 어디서 무너질지 모르는 위기감을 안겨주고 있다.

주변에는 이미 명예퇴직, 감원 등으로 치열한 경쟁에서 낙오된 많은 사람들이 집단우울에 빠져 있다. 생존경쟁에서 도태되거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한 처지가 갑자기 찾아올 수 있고, 너무 견디기 어려운 현실의 절망과 우울 때문에 자살충동을 느끼는 사람도 늘고 있다.

이같은 두려움과 우울의 감정을 국민들은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한마디로 내일을 알 수 없는 불확실성 때문에 가능하면 위협적인 현실을 보지 않으려고 한다. 10대 폭주족들은 심야에 오토바이 폭음을 내면서 거리를 질주한다. 그들은 침체된 감정이 자기네들 삶과 하등 관계없는 것으로 격리시키고, 신나게 느낄 수 있으면 그만인 것이다. 나라의 처지야 어떻게 되든 나만 경쟁에서 이기면 된다는 식으로 공익성에는 무감각한 사람도 많다.

선진국에서는 인간이 공동생활을 하면서 겪는 여러 감정들을 스스로 조절하는 방법을 강조하고 있다. 인격발달 측면에서도 지능지수(IQ)보다는 감성지수(EQ)를 중요시한다. 우리 사회에서 추락자살같은 충동적 행동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감정을 느끼고 다루는 세련된 대인관계 방식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감정을 술로 잊거나 「배짱」이나 「신바람」으로 둔갑시키는 데 문제가 있다. 인간의 감정을 서로 이해할 수 있도록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에서 경험을 통해 가르쳐야 한다. 개인 차원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감정이입이라는 지성적인 과정을 가르치는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사회전체의 정성회복운동도 필요하다. 대중 영향력이 큰 TV나 영화는 고민이 있는 사람이 술마시고 주정하는 것을 마치 인간의 정성인 양 표현할 게 아니라 사람간의 애정으로 분노, 좌절, 고민을 풀어주는 인간미있는 내용을 강조해야 한다. 폭력 미화도 자제해야 한다. 정성회복의 실천운동이 일어나야만 우리 사회에 참다운 희망이 있다.<이호영 객원편집위원·아주대의대 학장>

◎주부 우울증/발병률 남성의 1.5∼2.5배 높아/가족갈등이 가장 큰 원인/가벼울땐 대화로도 치료

사회 분위기가 침체되면서 우울증 환자가 늘고 있다. 우울증은 울적한 느낌이 기분상의 문제를 넘어 신체적 정신적으로 개인이나 사회생활에 영향을 주는 상태를 말한다. 슬프고 우울한 기분,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생각, 불면, 식욕감퇴, 피곤함, 성욕감퇴, 의욕저하, 집중력 감소, 기억력저하 등이 주증상이다. 특히 자신의 생각을 억압하려는 경향 때문에 두통 소화불량 만성통증 등의 신체증상도 나타난다.

우울증의 평생 유병률은 15%정도로 알려져 있다. 여성은 사회문화적으로 남성과는 다른 역할이 주어져 심리적으로 취약하다 보니 우울증 발병률이 남성의 1.5∼2.5배 정도로 높다. 주부우울증의 원인은 다양하나 동양문화권에서는 고부간의 갈등, 가족의 질병, 남편의 실직, 자녀의 학업문제, 결혼이나 사별 등 가족문제가 큰 영향을 미친다. 동양사회에서는 남성우월주의적인 사회분위기, 자식들이 성장해 독립함에 따라 찾아오는 공허감, 활동적으로 사회생활에 참여하는 남편과 비교하면서 느끼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도 주요 원인이다.

가족 중에 우울증 환자가 있으면 발병률이 5배이상 높다. 이는 가계연구 등을 통해 밝혀진 사실이다. 분자유전학의 발전으로 염색체와 우울증의 상관관계를 규명하려는 연구도 활발하다.

우울증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자살 가능성이다. 우울증 환자는 무력감, 분노와 공격의 감정, 죄책감과 망상 등으로 자살을 시도하기 쉽다. 자신에 대한 공격성이 확대돼 가족이나 평소 사랑하던 사람을 상대로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 최근 주부우울증 환자가 자녀를 죽인 뒤 투신자살하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는 것은 좋은 예이다.

진단은 우선 내과검진과 혈액·소변검사, 신체 각 기관의 기능검사 등을 통해 신체질환에 의한 우울증 여부를 판별해야 한다. 다양한 전문적 심리적 검사와 정신과 의사와의 면담도 필요하다. 검사결과 우울증으로 확진되면 약물치료, 정신치료, 집단인지치료, 광선치료, 전기경련요법 등 환자에 맞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 가벼운 우울증은 자신의 힘든 점을 누구에겐가 툭 터놓고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우울증은 치유될 수 있다. 빨리 발견해 적극적으로 치료할 수록 건강한 미래가 찾아온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이민수 고려대 의대 교수·고대안암병원 우울증센터소장>

◎청소년우울증/충동성 강한 시기 자살에 이르는 병/성격적 특징·유전적 소인 등 원인 다양/성인기 재발 막으려면 정신과 치료 필수

청소년 비행, 약물남용, 폭력 등이 사회문제가 된지 오래됐다.

정부도 각별한 대책을 세우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는 청소년 비행이 타인과 사회 전반에 엄청난 해악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청소년들은 비행에 빠지기 보다는 불안과 우울 등 심리적 고통 때문에 학업에 전념하지 못하고 친구와의 관계도 힘들어한다. 불안과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청소년이 비행을 저지르는 또래보다 훨씬 많다.

특히 우울증은 청소년 사망원인 제3위를 차지하는 자살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청소년기에는 기분변화의 폭이 매우 심하다. 더욱이 우울한 감정이 오래 지속되고 심한 경우에는 병적인 우울로 봐야 한다.

병적인 우울은 몇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우울한 성격이다. 이 경우 어렸을 때부터 우울감이 심하고 삶에 대해 부정적이다. 자신감이 결여돼 있고 일을 즐겁게 해나가지 못할 뿐아니라 조그만 어려움을 당해도 쉽게 포기하고 좌절하는 성격적 특징이 있다. 둘째, 좀더 심각한 주요 우울장애이다. 우울감이 심할 뿐아니라 장래에 대한 희망이 없고 의욕과 기력이 저하돼 학습이나 일상생활까지 힘들어한다. 가끔 자살을 심각히 생각하고 실행에 옮길 위험성도 높다.

셋째, 성인기 병이라고 할 수 있는 조울증이 청소년기에 나타나는 경우이다. 조울증은 우울증과 조증, 우울한 시기와 기분이 들뜨고 활동이 많아지는 시기가 교차되는 기분장애이다. 양극성 장애라고도 한다. 조울증은 심각한 정신질환으로, 성격이나 스트레스 때문에 오기 보다는 유전적인 소인과 생물학적 원인이 강하다. 또 그 정도가 심하기 때문에 정신병적인 상태까지 나빠지기도 하며 성인이 되어 재발할 우려도 있다.

청소년들은 충동성이 강하기 때문에 자살을 생각하거나 기도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청소년 중에 표정이 우울하고 의욕이 없으며 학업성적이 떨어지고 자주 혼자 지내려 하면 우울증을 의심해야 한다. 이 때 상담이나 정신과적인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최근 좋은 항우울제가 많이 개발돼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하다. 조기 치료는 우울증으로 인한 여러가지 이차적인 문제를 예방하고 성인기의 재발을 방지해 준다.<홍강의 서울대 의대 교수·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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