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갈색 억새바다가 출렁출렁/눈송이처럼 피어나 산들바람에도 물결되어 가을이면 슬피우는 ‘으악새’/125만평 억새밭을 우수의 계절 이 가을에 한번 가보자우리의 가을은 단풍과 갈대의 계절이다. 모두 가을의 상징이지만 둘을 표현하는 말은 다르다. 단풍은 그 색깔만큼이나 밝고 정열적으로 묘사되는 반면, 갈대는 흐느낀다든가 운다고 표현해 우수를 자아낸다.
갈대가 흐느낀다는 말은 풀섶에 몇 대씩 서 있는 화사한 모습만을 보아온 사람들에게는 얼핏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수만평 또는 수십만평씩 무리지어 물결을 이루는 광경을 보고 나면 이같은 표현을 실감하게 된다.
50년대 가수 고복수가 부른 「짝사랑」의 첫 구절 「아∼ 으악새 슬피우는 가을인가요」는 바로 이런 모습을 노랫말로 옮긴 것이다. 으악새를 새로 오인하는 사람도 없지 않지만 으악새는 날아다니는 새가 아니고 갈대를 이른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갈대로 불려지는 억새를 말한다. 갈대는 큰 강 하구나 늪지에 무리지어 피는데 웬만한 것은 키가 2m가 넘고 꽃은 솜사탕이나 둥실둥실한 솜뭉치처럼 황갈색으로 핀다.
어욱새 또는 으악새라고 불려지기도 했던 억새는 언제부터인가 갈대로 통하고 있다. 마치 같은 무렵에 피어나는 취꽃, 쑥부쟁이, 구절초꽃 등이 들국화로 불려지는 것처럼 말이다.
대나무처럼 매끈한 줄기와 시원스럽게 늘어진 메마른 잎새는 꽃대가 나오기 전까지 갈대와 비슷해 갈대라고 부르는 것인가 보다. 거기에 갈과 가을의 어감까지 비슷해 가을을 상징하는 풀로 불려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억새와 갈대는 모습이 흡사해 혼돈하기 쉬운데 일반적으로 산에서 자라나는 것은 억새, 수로나 바닷가에서 자라는 것은 갈대로 구분된다.
아무튼 우리가 알고 있는 갈대의 대부분은 억새이다. 억새가 무리지어 밭을 이룬 곳이 가을나들이의 명소로 손꼽히고 있다. 이런 곳은 대부분 평지가 아닌 높은 산정에 자리잡고 있어 경관이 더욱 환상적이다. 고원에 마치 눈송이처럼 피어난 억새꽃이 파도치듯 산들바람에 물결을 이루는 모습은 가을바람을 눈으로 보는 것이나 다름 없다. 이른 아침이나 저녁 노을이 질 무렵 바람이 다소 거칠게 일어 우수수 소리를 내지르며 이리저리 흩날리는 억새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시인이 아니더라도 우수를 느낀다.
밀양의 사자평, 창녕의 화왕산 산정과 정선의 민둥산, 장흥 천관산, 제주의 중산간지대 등이 억새밭으로 손꼽힌다. 단풍 명소 못지 않게 많은 사람이 몰린다.
특히 사자평고원은 억새밭으로는 으뜸이다. 우리나라 최대의 억새밭을 이루는 사자평고원은 넓이가 무려 125만평에 달한다. 밀양 표충사에서 올라가는 사자평은 1,000m가 넘는 가지산과 사자봉 사이 고원지대에 펼쳐진 광활한 억새밭으로 규모도 클 뿐더러 광평추파라 하여 가지산이 있는 재약산 8경 중에 첫 손꼽힌다.
사자평 억새밭은 매해 9월말 피어나기 시작해 10월 중순부터 11월 초까지 절정을 이룬다. 억새는 가을이 시작되는 9월부터 이듬해 봄까지가 시즌이지만 절정기의 장관을 맛보려면 10월부터 11월 중순이 가장 좋다. 억새꽃은 처음 피어났을 때는 자줏빛을 띤 줄기가 반지르르하게 윤기가 돌아 꽃 자체는 예쁘지만 잎과 줄기가 파란색이어서 그렇게 황홀하지는 않다. 시기가 너무 지나 잎과 줄기가 하얗게 바래도 볼품이 없다. 솜같은 꽃이 바람에 흩날리면서 줄기와 잎이 황금빛으로 반짝일 때가 제격이다. 10월 첫 주부터 셋째 주 사이에 억새는 제모습을 드러낸다.
사자평으로 오르는 길은 표충사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길과 쌍폭포를 지나 고사리 마을로 가는 길이 있다. 첫번째 길은 경사가 급하지만 20∼30분 단축하는 맛이 있고, 쌍폭포를 거치는 길은 완만한 편이다. 고사리 마을에서는 능선길보다 찻길을 따라 사자평에 이르는 것이 평탄하고, 억새길을 따라가는 맛이 있어 좋다.
◎표충사/사명대사 정기 서린 곳… 괴목밑 샘 물맛 일품
밀양의 표충사는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가 구국활동을 벌인 명찰이다. 특히 90년대 들어 복원작업이 마무리돼 호국·통일기원 사찰로 거듭났다. 복원작업은 3,000여 승병을 이끌고 왜군을 물리친 사명대사의 호국정신을 기리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명대사의 유물은 건평 88평 규모의 유물관에 모셔져 있는데 국보 제75호인 청동함은향완(향로)과 임란당시의 가사 장삼 투구 밥그릇 수저 등의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표충사에는 또 물맛 좋기로 소문난 샘이 있다. 일명 영정으로 불리는 샘은 표충사 뒷문을 열고 절밖으로 나가면 수백년 수령의 괴목 밑둥에 숨어 있다. 목젖을 휘감고 넘어가는 물맛은 질감이 비단결같고 뒤끝이 감미롭다. 영정이라는 샘 이름은 신라 흥덕왕의 셋째 왕자가 이 샘물을 마시고 나병이 완쾌됐다고 해서 붙여졌다. 언양에서 밀양 표충사에 이르는 긴 고갯길은 부산, 대구지역의 주민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드라이브코스로 사랑받는다.
◎먹을거리/염소 육회·불고기 별미
첫 기착지 언양은 언양불고기로 이름난 고장이다. 밀양재를 막 넘어서는 산외면에는 염소를 방목해 육회와 불고기를 전문으로 하는 관광농원이 있다. 산을 오르기 전 아침식사는 관광단지 식당이 무난하다. 오가는 길의 가을과실도 풍성하다. 밀양재를 넘는 길은 유명한 얼음골 남명사과의 주산지이고 표충사 일대는 밀양대추와 밤의 주산지여서 집집마다 고추대신 빨간 대추를 널어 말리는 모습이 이채롭다.
청도로 오르는 길은 땡감단지가 펼쳐지며 빨간 자연홍시를 사먹는 재미가 크다. 경산으로 이어지는 길은 수확기에 접어든 꺼먹포도가 길가에 줄지어 서 있다. 경산IC로 이어지는 길은 유명한 경산참외단지여서 지금도 노란 참외가 길손을 기다린다. 언양전통불고기집(0522―62―0940), 산천관광농원(0527―52―5100)도 유명하다.
◎가는 길
사자평 가는 길은 언양에서 밀양재(일명 영남재)를 넘는것이 더욱 진한 가을정취를 맛볼 수 있다. 서울, 중부권 그리고 대구권에서도 일단 언양으로 들어가 돌아올 때는 경산IC나 동대구IC로 빠지는 것이 이상적이다. 서울에서 언양을 거쳐 표충사 관광단지까지는 약 438㎞, 6시간 잡아야 무리가 없다. 최근 표충사 관광단지가 생기면서 깔끔한 장급여관이 들어서 잠자리가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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