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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개혁을 포기하는가/김장권 숭실대 교수(전문가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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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개혁을 포기하는가/김장권 숭실대 교수(전문가 진단)

입력
1997.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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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정국 정치담론 맹목적 보수 일색/집권위한 ‘반개혁’ 역사적 퇴보의 길오늘날 대선 정국에서 주요 쟁점은 여야 교체, 세대 교체, 3김 청산 등이다. 교체나 청산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때문에 선거정국은 언뜻 보기에 꽤 개혁 지향적인 것 같다. 그러나 그 내용은 어떤가? 사용되는 용어들만 그런 인상을 줄 뿐, 실제로 『아, 무언가 바뀌겠구나』하는 비전 제시도, 정책 차별성도 찾아 보기 힘들다.

득표를 위한 무원칙한 합종연횡이나 외부인사 영입 등 오히려 역사의 시계바늘을 되돌리려는듯한 움직임들만 있을 뿐이다. 김영삼 정권의 전성기를 화려하게 수놓던 개혁이라는 용어가 사라진 자리에 보수대연합이니 전·노 두 전대통령의 사면이니 하는 보수지향적 담론들이 난무하고 있다. 한국정치는 또다시 보수주의로 회귀하고 있는가?

사실 보수주의는 70년대 세계적인 경제위기 이래 전지구적 현상으로 확산되어 왔다. 특히 냉전체제가 자본주의 체제의 판정승으로 마감되자 세계 여러나라들은 보수세력을 중심으로, 안으로는 국가 역량을 묶으면서 밖으로는 지구촌시대의 무한경쟁에 앞서고자 자본주의시장의 활성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시대를 풍미하고 있는 이 새로운 보수주의는 개혁지향이라는 역설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냉전체제 이후의 새로운 체제 만들기를 주도해 온 선진국 보수세력들은 시장활성화를 위해 민영화, 규제완화, 작은 정부 지향 등 많은 개혁들을 적극 추진하여 왔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70∼80년대의 사회운동의 요구를 기존 정치체제가 수용하면서 보수주의를 굳혔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상당히 유연한 보수주의라고 볼 수 있다.

우리를 둘러 보면 어떤가? 한국에서 보수주의의 지배는 이미 남북분단 이래 확립되어 거의 구조화되어 왔다. 그래서 진보 혹은 개혁세력은 오늘날까지 한국의 선거정치에서 발붙일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전세계적으로 보수주의 공세가 격화된 90년을 전후하여 한국의 보수주의는 오히려 유연성을 보여 주기 시작하였다. 오랜 민주화투쟁의 한 결실로 탄생한 문민정부는 선진국 신보수주의 개혁에 큰 영향을 받으며 많은 개혁을 추진하였다. 금융실명제, 작은 정부 지향, 자유주의적인 교육개혁 등은 물론이고 우루과이라운드의 수용을 포함한 세계화정책의 추진 등은 문민정부가 추진한 신보수주의 개혁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불행하게도 문민정부는 국민적인 지지를 확보하는데 실패하여 여당은 정권상실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YS 정권에 대해 반감을 지녔던 사회세력들이 여러 방향에서 반격을 개시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개혁을 거부해 온 보수세력들의 공세도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정치적 반격이 모두 개혁 그 자체에 대한 반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YS정권이 「개혁」을 내걸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격은 쉽게 「보수」로 공식화하고 있다. 오늘날 대선 정국에서의 정치적 담론이 보수 일색으로 점철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결국 문민정부의 개혁 실패는 한국 보수주의의 유연성을 다시 경직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래서 세계사의 엄청난 변화와 무한 경제전쟁 시대를 헤쳐 나가기 위해 세계 각국의 보수세력들이 적극적인 개혁을 유연하게 추진하고 있는 이때, 유독 우리나라만이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표를 얻기 위한 경직된 보수주의에 매달리게 된 것이다.

경직된 보수주의가 사회내의 여러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여 많은 좌절과 국민적 에너지의 손실을 가져 온다는 것은 이미 우리가 과거에 체험한 일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그런 시행착오를 가질 여유가 없다. 숨가쁘게 변화하는 국제 환경에서 경직성은 바로 엄청난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세계사의 흐름에 뒤처짐으로써 많은 손실을 겪어 왔다. 구한말에 그랬고, 해방 이후에도 그랬고, 최근에는 우루과이 라운드나 그린 라운드 등의 각종 국제 협상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많은 손실을 입었으며 오늘날 우리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경제위기나 환경악화 등도 그러한 손실과 깊은 관련이 있다. 세계적인 흐름을 파악못한 경직성이 국가의 파멸까지 자초한 극단적인 경우를 멀리 가지 않아도 바로 같은 한반도 안의 북한에서 볼 수 있다.

지구촌 시대, 나라를 이끌어 갈 지도자들이 표를 얻기 위해 낡고 경직된 보수주의의 편린에 집착하고 있는 사이에 세계는 숨가쁘게 변화하고 있다.<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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