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각제·이원집정부·대통령중임 대선앞두고 쏟아지는 개헌논의/진정 국민이 원해서가 아니라 지지율하락의 탈출구로/집권방편 또는 연정수단으로 말바꾸기도 서슴지 않는 당리당략적 주장에 국민은 당혹스럽다「누구를 위한 개헌인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누구나 제기할 수 있는 개헌논의. 그러나 9월들어 각 대선주자 진영에서 앞다퉈 쏟아진 개헌논의는 국가와 정치발전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대선전략용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일부 주자들이 내세우는 개헌의 당위성은 그동안 그들 스스로의 주장을 뒤집는 것이어서 국민적 기대보다는 냉소가, 격려보다는 질책이 앞선다.
지난 3월 『앞으로 또다시 내각제 개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경우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며 당내 개헌논의 자체를 금지시켰던 신한국당 이회창 총재. 그러나 지난달 국민대통합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 등의 권력구조 개편을 주내용으로 하는 개헌 추진을 시사했다가 청와대의 반발로 「집권시 임기중 개헌가능」으로 한 발 뺐다.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는 96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국민회의가 개헌 저지선인 100석을 넘지 못하면 여당의 내각제 음모에 의해 평생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을 직접 뽑지 못할 수도 있다』고 경고와 호소를 거듭한 바 있다. 그러던 김총재도 최근들어서는 『대통령제가 좋지만 내각제도 민주주의고 정권교체가 시급하므로 내각제 개헌에 지지한다』며 「YS 내각제」가 아닌 「DJP 내각제」를 지지해 달라고 말을 바꿨다.
자민련 김종필 총재는 95년 당시 민자당을 탈당하면서 『내각제 구현을 위해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힌 이래 지금까지 계속 내각제 도입을 주장해오고 있다. 그러나 그는 5·16쿠데타로 헌정 사상 유일했던 내각제 정권을 『나라와 국민을 혼란에 빠뜨렸다』며 앞장서 무너뜨렸던 전력이 있다. 또 그의 내각제 옹호 발언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이 곱지않은 것은 80년과 87년 대선을 앞두고는 개헌에 대해 일체 언급하지 않았던 과거와도 무관하지 않다. 민주당 조총재와 이 전경기지사의 대통령 4년제 중임 개헌안도 국민의견을 진지하게 수렴한 결과로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현재 대선 주자들의 개헌논의가 대선 득표용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난이 높은 것도 이때문이다. 헌법을 고쳐야 하는 당위성보다는 후보간의 합종연횡과 이를 바탕으로 한 득표 전략에 불과하다는 비판이다. 또 우리 정치의 안정을 위해서 권력구조 개편을 중심으로 하는 개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정치권의 정략적 개헌논의가 무성해지자 「오해」를 살까 봐 목소리를 낮추거나 아예 말을 삼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개헌을 하려면 대선 후 국민 뜻을 살펴 추진해야 할 것』이라든가 『선거와 관련한 개헌 논의는 정치 안정을 해치고 국민선택을 혼란스럽게 만들 것』이라는 비판은 왜일까. 신한국당은 지지율 하락에 대한 탈출구로, 국민회의는 집권을 위한 편의적 방편으로, 자민련은 연정의 수단으로 개헌을 모색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정치학교수. 『지금 헌법은 적어도 6·10민주항쟁이 6·29선언을 끌어 낸 후 상당 기간 연구와 공론화 과정을 거쳤고 여야 협상을 통해 압도적인 국민지지를 받아 냈다. 이런 현행 헌법이 정말 우리 실정에 적합하지 않은지, 내각제·이원집정부제·4년 중임제의 장점은 무엇인지, 또 자신들의 개헌논리에 대해 각 주자들은 얼마나 연구를 해왔는지, 국민의 뜻과 얼마나 부합하는 것인지 등에 대해 아무런 검증이 없었다. 민주국가의 헌법이 대선주자의 대권 놀음에 마구잡이로 끌려 다녀서는 안된다』
누구를 위한 개헌인가? 이런 의문 뒤에는 9차례나 고쳐진 우리 헌법이 충분한 사전 진찰도 없이 또 한차례 수술대에 눕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깊이 깔려 있다.<염영남 기자>염영남>
◎민심은 대통령제? 내각제?/지지도 팽팽 불구 최근 내각제 급부상/대통령제 폐해에 따른 반사적 거부감에 지지후보 따르기도 한몫
현재 정치권의 개헌 논의는 국민의 뜻을 반영한 결과인가. 여론조사에서 내각제에 대한 선호도가 과거보다 높아진 것을 두고 「개헌의 필요성을 느끼는 민심」으로 단정할 수 있을까.
현재의 다양한 개헌 논의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쟁점은 「5년 단임의 대통령중심제」 권력구조를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로 바꾸자는 것. 권력구조와 관련한 최근의 여론조사는 조사방법에 따라 다양한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당장의 개헌을 염두에 둔 물음에는 아직까지 「내각제」 응답이 「대통령제」보다 크게 낮다. 그러나 단순한 선호를 묻는 물음에는 양쪽이 팽팽하고 일부 조사에서는 내각제 선호가 우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개헌론을 「정권연장 음모」 차원에서 바라보던 시각이 많이 부드러워져 내각제 지지율이 올라 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정기적으로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여론조사를 행해 온 한국갤럽에 따르면 지난달 조사에서 내각제 개헌 찬성(39.3%)이 반대(32.5%)보다 오히려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이런 결과를 곧바로 우리 국민이 개헌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기에는 많은 난점이 있다. 지난 수년간의 여론조사 결과 추이와 세부 조사 항목을 살펴보면 이점이 명확해 진다. 대통령제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과 측근의 전횡에 대한 염증이 반사적으로 내각제 선호를 가져 온 면이 강하다. 또 정치권의 개헌 논의가 달아 오르면서 막연히 지지 후보의 주장을 따라 간 흔적도 조사결과 분석에서 얻어진다.
현정부 들어 내각제 선호는 국민이 대통령의 실정이나 권력주변의 비리를 접할 때 일시적으로 상승했다.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이 부정축재 혐의 등으로 구속된 95년 12월 내각제 선호도가 42%에 달해 대통령제 40.2%를 앞질렀다. 이보다 석달전인 95년 9월 대통령제 선호도(47.5%)가 내각제 선호도(31%)보다 크게 높았던 것과 비교된다. 그후 내각제 선호도는 점점 떨어져 96년 10월에는 대통령제 52.3%, 내각제 33.3%로 차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상황이 다시 역전된 것은 올 3월(내각제 36.8%, 대통령제 35.9%). 한보사건과 김현철씨 국정개입 논란으로 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비판여론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와 일치한다. 이런 흐름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지 정당의 집권 전략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응답 행태도 엿보인다. 이와 관련, 특히 주목할 만한 변화는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 지지자의 내각제 선호도가 급격히 높아지고 있는 것. 국민회의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권력구조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96년 9월 대통령제 지지가 절반을 넘는 50.3%로 내각제 지지 37.1%를 크게 앞질렀다. 그러나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내각제를 고리로 「DJP연합」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한 5월에는 내각제 지지율이 47.4%로 대통령제 38.1%를 넘어서는 「역전현상」을 보였다.
정강정책에 대통령제를 명시한 신한국당 지지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96년 10월 대통령제(63.6%)와 내각제(24.8%)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으나 최근에서는 내각제 개헌 찬성이 34.5%, 반대가 39.2%로 근접했다. 신한국당 이회창 총재의 지지도가 바닥세를 보이고 이원집정부제가 거론되는 등 개헌 가능성이 시사된 시점과 일치한다.<이상연 기자>이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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