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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저울’에 서면…/정진홍 서울대 교수(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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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저울’에 서면…/정진홍 서울대 교수(아침을 열며)

입력
1997.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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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진다. 하늘이 높고 들녘이 풍성하다. 농경문화의 틀이 깨질만큼 깨졌어도 아직 그 시대의 은유는 여전히 의미를 가진다. 아직 우리는 산업사회 또는 산업사회 이후를 묘사할 적절한 은유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그런한 「가을의 풍요」를 이야기하는 어법은 아직 유효하다.가을걷이는 늘 감사를 그 윤리로 갖는다. 봄의 파종과 여름의 김맴을 통해 거둬들이는 풍요는 지성이면 감천한다는 신앙을 현실로 확인하게 한다. 그것은 「돈 놓고 돈 먹기」투의 인과율을 넘어서는 신비이다. 우리는 가을을 그렇게 체험한다. 그러므로 가을에는 누구나 넉넉하다. 누구나 하늘같은 드높음과 달빛같은 투명함을 지닌다. 미움이 가시고 허망함이 사라진다. 뿌듯한 보람을 가득 안고 마음은 그윽하고 따뜻해진다.

그러나 가을의 윤리는 감사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가을은 두려운 자기성찰을 그 규범으로 지닌다. 가을은 살아온 봄과 여름을 그대로 드러낸다. 타작마당은 풍요만을 약속하지 않는다. 그것은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심판의 마당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마당에서 이루어진 결과에 대해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가을은 실은 두려운 계절이다. 우리는 누구나 가을이면 자신의 무게를 달기 위해 저울 위에 올라서야 한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그 저울 위에서 자신의 함량미달을 확인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감사는 다만 가을의 지고선일뿐, 가을의 현실은 철저하게 심판의 두려움이라고 해야 옳다.

그렇지만 가을은 여전히 감사를 그 윤리로 지닌다. 지나고 되돌아 보아 자신의 참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계기를 맞는다고 하는 것은 축복이지 저주가 아니다. 도저히 멈춤이 삶의 본연일 수 없는 오늘의 삶의 흐름에서 그래도 가을은 잠시나마 문득 멈춤을 현실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내가 있는 자리, 내가 가고 있는 방향, 내가 하고 있는 일, 나 자신의 존재근거를 가을걷이는 되묻게 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때인들 그렇지 않을까마는 오늘 우리의 현실은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때로 변화는 가능성의 출구를 확인한 희열로 채워지기도 하고, 변화 자체가 의도된 것인 경우 그 변화란 삶이 매진하는 속도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러한 변화를 환호하고 즐긴다. 사실 우리는 그래왔다. 심한 굴곡이 있었고 아픈 경험이 점철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 변화의 결과를 누리고 즐길 만큼 그것은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변화를 이야기 하는 것은 좀 다르다. 우리는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빚어내는 현실에서 우리 자신이 주인이기 전에 휘몰아치는 상황적인 변화는 우리를 아무런 준비없는 당혹 속에 빠지게 한다. 그런가 하면 예상하지 못했던 현실의 복합적인 재구조화과정과 직면하면서 속수무책의 무력감에 빠지기도 한다.

이러한 사태는 우리를 두가지 다른 극으로 치닫게 한다. 불가피한 자기성찰의 계기를 자학으로 가득 채우는가 하면 신바람을 뇌이는 환상을 좇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정치현상이나 경제현실이 그러하다. 『이 더러운 나라에 살기보다는 이민 가는 것이 낫지!』하는 자조가 예사로운가 하면 집권 자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당장 이루어내는 것처럼 선언하는 엄청난 수사가 난무한다.

그러나 이 두 태도는 건강하지 않다. 우리는 좀 더 차분해야 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꿰뚫는 긴 맥락에서 현재를 인식하고 판단하면서 지금을 겪는 지혜로움을 발휘해야 한다. 이를 위한 우리의 태도는 두 모습으로 다듬어져야 한다. 하나는 가을 하늘처럼 투명한 합리적 분석과 인식을 생활화하는 일이다. 합리적 지성의 태도가 우리 현실을 주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자학과 환상은 오늘 우리의 현실에 전혀 적합하지 않다.

또 다른 하나는 비록 자학과 자조적인 비판, 그리고 비현실적인 수사와 환상의 난무라 할지라도 그러한 현상 자체를 긍정적인 것으로 수용하는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는 일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마음껏 비난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마음껏 자기 꿈을 발언하는 일은 그리 쉽게 누릴 수 있는 현실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는 사실 그 자체를 우리는 긍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다면 우리는 심판의 계절인 이 가을을 비록 함량미달의 무게를 확인하면서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가을이다. 이 가을을 우리는 감사를 계율로 살아가는 성숙한 사람, 성숙한 사회로 살았으면 좋겠다.<종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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