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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원 ‘토마토와 나이프’(이광호의 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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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원 ‘토마토와 나이프’(이광호의 시 읽기)

입력
1997.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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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의 전복­감각의 갱신여기 당신 앞에 탐스러운 토마토가 있다. 어떻게 당신은 그것을 묘사할 수 있을까? 오규원의 「토마토와 나이프」(「세계의 문학」 가을호)라는 시를 보자. 이 시는 너무나 단순해서 어떤 수사나 관념도 발견하기 힘들다. 그런 수사적 장치들을 제거하고 토마토가 있는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려 하는 것이다. 1연은 「토마토가 있다/ 세 개/ 붉고 둥글다/ 아니 달콤하다/ 그 옆에 나이프/ 아니 달빛」으로 되어 있다. 시는 사진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 「그대로」보여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시는 사진보다 사물의 윤곽과 질감을 단순화시켜 드러내는데, 그것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사물이 「있음」을 보다 생생하게 전달하려는 것이다. 물론 「토마토」 「나이프」 「접시」와 「달빛」의 이미지는 어떤 연상작용을 불러일으키고 우리들의 상상력을 촉발시킨다. 「토마토와 나이프가 있는// 접시는 편편하다/ 접시는 평평하다」는 묘사 역시 말놀이에 의한 어떤 재미를 선사한다. 그러나 그것을 통해 우리가 만나는 것은 어떤 강요된 의미가 아니라 사물의 아름다움이다.

물론 시인은 정물화만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시작 혹은 끝」(「문학과 사회」가을호)에서 독자는 시적 화자의 렌즈를 따라 시골길을 걷게 된다. 그 길은 처음과 끝이 있고 의미의 종결이 있는 그런 길이 아니라 사물과 사물들, 사물과 렌즈와의 끝없는 접촉이 있는 그런 길이다. 그래서 시는 시의 「길」의 플롯에 관한 우리들의 관습적인 기대를 넘어선다.

또 다른 시 「하늘과 돌멩이」에서는 「새가 푸른 하늘에 눌려 납짝하게 날고 있다」, 「길 한켠 모래가 바위를 들어올려/ 자기 몸 위에 놓아두고 있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은 사물에 대한 우리들의 습관적인 인식을 전복시킨다. 상투적인 인식은 상투적인 묘사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그 전복에 의해 가능해지는 것은 새로운 관념의 획득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우리들의 감각의 갱신이다. 위로받기 위해서나 혹은 사상과 지혜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물의 존재를 보다 생생한 실감으로 만나기 위해 우리는 오규원의 시를 읽는다.<서울예전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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