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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 명정,슬픈 각성/정병진 사회부 차장(앞과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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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 명정,슬픈 각성/정병진 사회부 차장(앞과 뒤)

입력
1997.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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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해야할 문제, 풀리지 않는 해법, 답답한 마음이 가득할 땐 취하고 싶어진다. 할 일이 많고 생각이 복잡해도 해결할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고민거리」가 아니다. 고민거리가 머리에 가득할 때 술을 마신다. 취했을 때만이라도 고민의 멍에를 벗고 싶은, 그래서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은 때문이다.대학졸업생 4명 가운데 1명만이 취직을 할 수 있는 상황이다. 나머지 3명은 (잠재적)실업자다. 올해안에 주가지수가 500대로 떨어지고, 1달러당 원화의 환율은 1,000원을 넘어설지도 모르는 형편이다. 국내에선 투자가 실종되고, 국외에선 경쟁력이 없어졌다. 기업도산과 명예퇴직의 바람이 휩쓸고 있고, 남은 직원은 계속된 임금동결에 움츠리고 있다. 그런데도 요금과 물가는 10%, 20%씩 날뛰고 있다. 주변을 둘러봐도 마찬가지다. 멀쩡한 비행기가 후두두 떨어지고, 대학을 나온 임신한 가정주부가 어린이를 유괴해 살해하고 있다.

정치권은 「정치」 외엔 관심이 없다. 정기국회가 열렸으나 민생문제를 꺼내면 「정치감각」없는 「곰바우」가 된다. 정권교체를 앞두고 공무원의 복지부동과 부조리가 횡행하고 있다. 그러나 사정당국은 선거에 도움이 안된다며 못본체하고 있고, 국회는 스스로 국정감사권을 「포기」했다. 국민이 「술에 취한」 틈을 타서 무언가를 해치우겠다는 속셈으로 여겨진다.

고민을 해결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 생각하면 할수록 골치만 아프다. 취하고 싶은 것이다. 잊어버리고 싶은 것이다. 마이클 조던에 취하고, 선동렬과 박찬호에 취하고, 월드컵축구에 취했다. 「술권하는 사회」이지만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전국민이 기분좋은 명정에 젖었다. 정치도 경제도 무의미하고, 사회는 아무러면 어떠냐는 심정이다. 「즐겁게 취한 사람은 한여름에 버스를 타더라도 창가에는 앉지 않는다」는 말처럼 취기를 잃기가 두려운 것이다.

그러나 각성의 상태는 돌아오게 마련이다. 『이제 무슨 낙으로 살아갈까』하며 퍼지르고 앉아만 있을 수 없다. 그러기엔 주변이, 눈앞이 너무나 암담하다. 축제는 일단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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