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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보스니아 수렁서 발빼라(키신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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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보스니아 수렁서 발빼라(키신저 칼럼)

입력
1997.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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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차이나로부터 소말리아에 이르는 미국의 대외정책은 후퇴의 연속이었다. 정책 목표가 명확히 설정되지 않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적절한 방법을 강구하지 못했으며, 제한된 시간내에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여론 형성작업이 미흡했던 것이다.이제 우리는 보스니아에서 유사한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우리의 목표는 비현실적이고, 강구되고 있는 수단은 목표를 이행하는데 적합지 않다. 또 행동에 뒤따를 결과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부족할 전망이다. 이 세가지 요인이 충족되지 않음에 따라 (보스니아)정책은 표류하고 있다.

딜레마의 원인은 보스니아국가 창설 당시로 거슬러 올라 찾을 수 있다. 91년 유고연방이 해체되기 시작하자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다른 회원국들처럼 조각난 행정단위들을 독립국가로 인정했다. 슬로베니아나 크로아티아 같이 단일민족이 다수인 경우 이 결정은 타당했다. 하지만 보스니아는 달랐다. 구원에 찬 크로아티아계 세르비아계 회교계 등 다민족이 뒤엉킨 보스니아를 한 국가로 묶으려는 노력이 살육의 내전을 초래하고 만 것이다.

미국의 중재로 보스니아의 휴전을 가져온 데이턴 평화협정도 똑같은 딜레마를 담고 있다. 군사적으로는 각 민족별로 분리시켜 놓았지만 정치적으로는 정반대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즉 다민족 국가라는 하나의 기치 아래 이들을 결집시키려 해 사태를 원점으로 돌려 놓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보스니아의 긴장을 정치적 문제로 파악, 각 정파를 아우를 수 있는 법제와 갈등해소 장치 마련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보스니아사태는 수세기동안 쌓여진 반목과 원한에 따른 역사적 경험이 문제의 핵심이다. 지난 세월동안 세르비아계는 정교, 크로아티아는 가톨릭, 회교도는 이슬람이라는 가치를 위해 서로간에 끊임없이 반목해 왔다. 이같은 종교적 대립에 미국은 자신들의 세속적인(비종교적인) 경험에서 우러나온 정치적 해법을 적용하려 한다.

NATO는 6년전 보스니아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되던 인종청소 등 유혈사태를 초기 단계에서 더 효과적으로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렇지 못함에 따라 이제 보스니아의 각 지역은 단일민족으로 나뉘어 거주하게 됐다. 데이턴협정의 정치분야 조항은 이같은 상황을 반전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민족간 자유 이동을 보장하고 피난민의 귀향과 민족 화합을 위한 선거를 실시하는 것 등이다. 하지만 이같은 비전은 곧 신기루가 되고 말았다. 민족간 이동은 커녕 우편, 전화도 연결되지 못하고 각 민족은 각자의 통화, 여권 등을 발행하고 있다. 자동차 번호판도 제각각이다.

미국의 정책은 현실을 무시함으로써 뒤틀리고 말았다. 우리는 상당한 경제·정치적 압력을 구사해 크로아티아계와 회교도간의 강제결혼을 성사시켰다. 이것이 이른바 「보스니아 연방」이다. NATO군은 현재 연방과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 지역 사이의 휴전선만 지키고 있다. 보스니아 다민족국가는 또 한차례의 전쟁을 통해 한쪽이 완승을 거두기 전에는 태동치 않을 전망이다. 미국의 데이턴 협정 이행 강요는 이러한 결과를 도출할 뿐이다. 현재 휴전은 우월한 NATO의 군사력과 준비가 안된 회교도들이 공존을 원하기 때문에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회교도들이 강해지면 또 한 차례의 인종청소가 우려되고 이 경우 크로아티아의 개입은 명확한 사실이다. 또 전통적으로 세르비아계의 보호자인 러시아가 좌시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미국은 보스니아에 다민족국가 탄생을 위해 희생을 치러야 할 만한 국익이 없다. 보스니아내 제정파들의 협상에 따라 다민족국가가 태동한다면 이를 환영해주면 됐지, 미국인의 희생이 따르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한편 전범 문제에 대해서는 이들을 헤이그재판소에 세워야 한다는 데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현재의 상황하에서 미국의 군사적 행동은 세르비아계의 대대적인 반발을 불러 일으킬 뿐이다. 때문에 미국이 자신의 역할을 휴전 감시로 제한하고 정치 문제는 당사자들에게 맡긴다면 그 바탕위에서 전범문제는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해결하지도 못할 사태에 절대 빠져 들어서는 안된다.<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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