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뿌리깊은 해바라기성 지혜가 과연 오늘의 삶에도 통용될 것인가.우연히 필자는 대권지망생, 정치인 그리고 몇몇 식자들과 자리를 함께 하게 되었다. 정치인과 대권지망생인 모씨가 자리하고 보니 어느덧 대권주자들의 평이 나오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도 안되고, ○○○도 안되고, 동석한 △△△씨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지지발언이 튀어나오면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순간 필자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초등학교 반장선거에서도 패자는 깨끗이 승복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는데 소위 대권경선에서, 그것도 각서를 16차례나 써놓고는 저모양』이라면서 혹평하던 사람도 박수에 동참을 하는데 필자는 기가 질릴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한마디 하고 말았다. △△△를 진정 위한다면 자중토록하자는 요지였다. 이때 당사자는 물론 좌중 모두는 하지 않을 말을 왜 하느냐는 눈초리였다. 순간 후회가 스쳤다.
더욱이 필자로 하여금 낭패감이 들게 한 것은 『그가 만일 대권이라도 잡으면 어쩌려고 사업하는 분이 겁도 없느냐』는 모씨의 충고였다. 『설령 대권을 못잡더라도 힘쓰는 정치인 앞에서는 무조건 옳다, 제일이다 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이다. 사실 그렇다. 이땅의 사람들, 특히 식자층은 오랫동안 힘있는 자 앞에서 해바라기식 지혜를 발휘하는데 민감해야 했다. 그래야만 출세도 하고 부도 누리고 피해도 면할 수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우리는 이방원의 싯구대로 살아온 자는 항상 부귀영화편에 있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가 하면 <이몸이 죽고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줄이 있으랴> 는 정몽주의 싯구쪽에 있던 사람들은 대개 낙오자요, 피해자일 뿐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몸이> 이런들>
문제는 오늘날도 해바라기성 지혜가 국가운용에 통용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세계가 일일생활권이 되어 피차 속속들이 알고 있는 현실에서는 도무지 우리식만으로는 살 수 없는 환경이 되었다. 오늘날의 세계는 우리의 모순을 방관하지 않는다. 금번 한보사태, 기아사태 등에서 생생하게 체험하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유럽금융계가 우리의 부실금융에 제재를 가하고, 남북관계에서 미국이 우리를 무시하고, 일본이 일방적으로 한일어업협정을 파기하는 것도 따지고보면 우리를 얕잡아 본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 개인보다 나는 당을 사랑한다. 경선에 승복할 것이며 결코 탈당하지 않는다』 『서울시장 자리를 징검다리로 하여 대권에 나설 생각은 없다. 나를 선택해준 서울시민을 버리지 않겠다』 『나는 완전 정계은퇴를 선언한다. 내가 더 이상 대권에 도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국민을 상대로 공언해 놓고는 거침없이 뒤엎는 이들, 또한 자숙하는 의미에서 죽은 듯이 엎드려 있어야 할 자는 물론, 경선에 참패를 하고도 뒤집기·흔들기를 일삼는 이들이 여전히 정국의 주요인물로 지칭되는 것도 알고보면 줄서기 정치인, 식자들이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뿐이랴, 구정치인은 그렇다치고 참신성을 앞세워 구태를 타파하겠다고 공언한 사람마저 구태에 찌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보수대연합이니 하며 국민정서와는 거리가 먼 오발탄만 연일 쏘아올리고 있다.
이들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하자. 우리의 앞날은 어찌될 것이며 세계의 눈은 우리를 어찌 보아줄 것인지. 이 의문의 결과를 입증해주는 것이 현 문민정부이다. 해바라기성 참모들이 대통령의 심기에만 매달려 급습하다시피 실시한 금융실명제는 과연 성공한 것인가. 경과규정이나 계몽기간, 여과장치도 없이 화폐개혁하듯 시행한 금융실명제는 결과적으로 과소비 풍조를 조장함으로써 경제침체만을 초래했으며 한보·기아사태도 알고보면 윗분의 심기와 여론의 향방에만 신경을 쓰다보니 정작 사건의 핵심은 외면함으로써 호미로 막을 사태를 가래로도 못 막는 사태를 초래한 것이다.
아무튼 이들의 해바라기 성향때문에 우리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치관을 상실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행태를 한 후보자의 지지율이 그토록 높을 수가 있으며 또한 사과 한마디 없는 과오의 거물정치인들이 여전히 정국의 중요변수가 된다고 모든 언론에서 쉬지 않고 특필할 수 있느냐 말이다.<대한불교조계종 중앙신도회장>대한불교조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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