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 교육수준 비해 사회적 권한 최하위 수준/성역할 고정관념 불식 등 구체방법 다각도 모색을「한국의 인간개발지수 32위, 성별권한척도 73위」라는 유엔 개발프로그램(UNDP)의 발표를 접하면서 일전에 모 자동차회사 사장으로부터 들은 경험담이 생각났다. 2년전 자동차 수출관련 협상을 위해 남미의 한 국가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라고 한다. 당시 우리나라로 치면 통상산업부 장관에 해당하는 인사를 만나기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그 자리에 멋진 중년여성이 들어오는 순간, 자신이 심히 당황하여 협상과정에서 상당히 고전을 했다는 고백이었다.
성별권한척도(GEM: Gender Empowerment Measure)란 여성이 남성과 비교해 정치·경제 영역에서 얼마만큼의 권한을 행사하느냐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전문직·관리직의 여성비율, 의회의석의 여성점유율등을 기준으로 산출된다. 한국여성의 전문·관리직 진출비율을 보면, 95년 현재 11.2%로 70∼80년대의 2,3% 수준에 비해 크게 성장했으나 선진국 수준과 비교해서는 현저하게 뒤떨어진다. 한편 의회 의석의 여성점유율을 보면 96년 15대 총선에서 지역구 의원 3명, 전국구 의원 6명이 당선되어 총 국회의원 299명 가운데 3% 수준을 기록하였다. 95년의 지방의회 의원 선거에서는 기초의회 의원 4,541명 가운데 72명이 당선되어 1.6%, 광역의회 의원 972명 가운데 55명이 당선(비례대표의원 포함)되어 5.7%를 기록하였다.
이상의 지표는 명백히 타고난 생물학적 성에 따라 사회적 차별이 구조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자료들이다. 이러한 성차별 현상은 인류가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합리성 정의로움 인본주의 등과 같은 보편적 가치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으로 필히 극복되어야할 사회구조적 차원의 문제이다.
한국 여성의 GEM 73위는 중동지역 여성들을 제외하고는 세계에서 최하위권에 드는 것으로서 한국여성의 교육수준이나 경제활동 참여율 등과 심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어 많은 학자들에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의 하나로 남아 있다.
일부에서는 여성의 권한을 측정하는 기준 자체를 문제삼아 한국여성들이 공적 영역에 진출하지 않았다고 해서 여성의 권한이 약한 것은 아니라고 강변하기도 한다. 공적 영역에서의 권한만을 지표로 삼는 것은 서구중심적 시각에서 나온 오류이자 편견이라는 것이다. 분명 한국여성들은 서구여성들에 비해 사적 영역인 가족 및 친족관계 안에서 나름대로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따라서 사적 권력이 있기에 공적 권력을 추구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보다 냉철하게 생각해 보면 사적 권력은 여성 자신의 능력이나 잠재력을 적극적으로 계발하고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주체적 권력이라기 보다는, 누구의 아내 혹은 어머니라는 파생적 지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권한을 행사하는 기생적 성격이 강하다. 그러하기에 이 사적 권력은 비생산적이고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더욱이 현대 사회와 같이 공적 영역에서의 결정이 부부관계와 같이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에까지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회구조하에서 여성들이 주장하는 사적 권한은 「자기 합리화」 내지 「허위의식」의 수준을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덧붙여서 약 2% 수준의 보고에 머물고 있는 가족폭력 내지 성폭력의 실태나 무임금 가족종사자 가운데 여성 비율 등을 고려해본다면 한국여성의 사적 권한의 수준도 의문이 든다.
이러한 상황에서 GEM 73위의 원인을 문제삼는 것 역시 현명한 태도는 아니다. 여성이 차별받는 원인을 남녀간의 생물학적 차이로 귀속시킨다거나, 『여자들이 오히려 여자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그 책임을 희생자인 여성에게 전가한다면 우문우답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명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질문 자체가 지혜로워야 한다. 우리는 바로 이 순간부터 현재 GEM 73위에 머물고 있는 여성의 권한을 어떻게 하면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인가를 질문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정치 경제 영역에서의 「여성의 세력화」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끌어낼 것이냐를 물어야 한다.
이에 대한 답은 사회 각 영역에 아직도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성역할 고정관념 및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불식을 위한 노력, 지나친 성불평등 구조의 악순환 고리를 시정하기 위한 각 분야에서의 여성할당제 도입,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여성발전기본법의 내실있는 운영 등 다각도로 모색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이 사회발전과정에 평등하게 통합되지 않는한 진정한 의미의 발전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이미 세계 무대에서 확실히 검증된 주장이다.<사회학>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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