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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공해를 추방하자/고영복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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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공해를 추방하자/고영복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아침을 열며)

입력
1997.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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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의 공고가 나오기도 전에 벌써 선거열풍이 몰아치고 있다. 언론기관에서는 연이어 여론조사의 결과를 발표하여 유권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는가 하면 방송은 쉴새 없이 후보들을 끌어내고, 정치인들은 새로운 판짜기를 위한 처신에 동분서주하고 있다. 온통 나라가 정치적 공해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정치 아니면 대화가 안될 정도로 사람들은 정치판 유언비어의 소용돌이 속에 끼어드는 것을 좋아한다. 국민의 정치의식의 빗나간 왕성함에 놀랄 지경이다.그러나 이러한 판국을 넘어서서 조용히 우리 자신을 반성해 보면, 과연 우리나라는 제대로 가고 있는가 하는 걱정과 탄식이 나온다. 우선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정치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권위주의 정부로부터 민주주의 정부로 옮겨 가는 과정에 있는데도 민주주의적으로 선출되는 대통령을 과거의 권위주의적 정부의 대통령과 같은 것으로 오인하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면 무엇이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으로 모두가 받들어 대는 것 같이 보인다. 후보들도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세상이 바뀔듯이 큰소리를 치며 아첨성 공약을 남발하는가 하면, 언론은 은근히 그것을 부추기고 있다.

서민으로서는 대통령이 누가 되든, 대통령중심제이든 내각중심제이든 별로 바뀌는 것이 없을 터인데도 정권이 바뀌면 직접적 영향을 받는 주변인물의 선동에 넘어가서 마치 큰 변혁이 올듯이 군중심리에 빠져들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 몇몇 정해진 자리를 제외하고는 자리이동이 있을 수가 없는데도 정치판은 불안심리와 공포심리마저 확산시키고 있다. 민주주의란 힘을 분산시키는 것인데도 우리의 기득권층은 자기보신을 위해 힘을 모아주려는 자기모순적 행동을 하고 있다.

여론조사에도 문제가 있다. 선거 전의 여론조사는 유권자의 고정표를 확인하는데 그치는 것이고 부동표나 고민표의 향방은 결코 예측하지 못한다. 여론조사는 유권자를 찾아 다니면서 의견을 묻는 것이지만 선거는 유권자가 자발적으로 투표장에 나가야 한다. 그러니 예측치가 그대로 맞을 리가 없다. 여론조사는 객관적이라고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은근히 흐름을 조작할 수가 있다. 그런데도 낭비적인 조사가 속출하고 있다. 그리고 조사결과를 공개하느냐 안하느냐에 대한 윤리적 판단도 중요한 것인데 여론조사의 자본주들은 돈의 권력을 무차별적으로 남용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오늘의 여론조사는 국민들에게 조사가 갖는 역기능을 확산시키고 있다. 조사에 식상하면 사람들은 심리적 저항감을 갖는다. 특히 조사결과가 선거용으로 쓰인다고 알면 정반대의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지금은 조사를 해도 잘 응하는데, 그것은 조사조차도 하지 못했던 과거의 서러움에 대한 보상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점차 조사에 응하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 조사결과를 위해 자기가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 괴롭기 때문이다.

허상을 퍼뜨리는 것은 방송이 더 심하다. 후보의 방송출연은 정치인의 탤런트화를 촉진하고 있다. 정치인의 달변과 제스처는 정치능력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데도 방송매체는 실속보다는 허식을 중요시하게 만들고 있다. 너무 매체에 노출되다 보면 신비성이 없어지고 위신이나 존경심마저 사라지게 된다. 지금 우리는 「지도자감이 없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데, 그것은 언론기관이나 방송매체가 너무 사람을 벗겨 버리기 때문에 나오는 부작용으로 보인다. 자기의 약점을 감추기 위해서 후보들이 허구적인 자기를 만들어 보려고 애쓸 것은 틀림없다. 나쁘게 말하면 정치적 위장과 조작을 만들어 낼 위험이 있는 것이다.

요컨대 선거철을 맞아서 선거에서 한 몫 보려는 이해관계자와 추종자의 장난에 국민이 속임을 당해서는 안된다고 주의를 환기하고 싶은 것이다. 정치의 힘이 작을수록 바람직한 사회인데도 정치꾼들의 권력놀음에 휩싸여서 국민은 자기 중심을 잃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당이 재집권하든, 야당이 집권하든, 정치에 영향받지 않고 국민생활은 조금씩 나아지는 건강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정치가 주인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 사람이 주인이 되려면 정치를 수단으로 생각해야지 목적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판국은 정치를 목적으로 끌어올리는 정치적 음모와 공작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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