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선거가 불과 80일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선거의 구도와 전망은 매우 불투명하다. 중요한 원인의 하나는 후보의 난립이다. 현재까지 정당의 후보로 선출되었거나 출마의사를 공표한 사람이 무려 8명에 이르고 있다.이같은 후보의 난립은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절차인 선거의 의미와 기능을 사실상 형해화할 우려가 없지않다.
우선 후보의 난립은 국민들의 정치적 냉소주의와 정치적 무력감을 증가시킬 가능성이 있다. 각 정당이 내놓는 정책공약 사이에 차이가 큰 경우에조차도 유권자 개인으로서는 특정 정당의 지지로 자신이 기대할 수 있는 효용의 증가는 극히 미미할 수 밖에 없다. 정당간의 차이가 적다면 기대효용은 더욱 줄어들게 된다. 그 후보가 그 후보이며 자신과는 별 상관없는 일이라는 인식의 확대는 정치에 대해 냉소적이고 방관자적인 태도를 증가시키게 마련이다.
후보의 난립은 또한 유권자들을 혼란에 빠뜨림으로써 지지후보의 합리적인 선택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유권자들은 각종 연고와 같은 손쉬운 기준으로 지지후보를 선택하게 된다.
후보난립의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른바 「순환적인 선호」의 가능성을 증가시킨다는 점이다. 후보 1보다는 후보 2를 선호하고 후보 2보다는 후보 3을 선호하지만 후보 3보다는 후보 1을 선호함으로써 물고 물리는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 순환적 선호의 확률은 후보자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급격히 높아진다. 수학자 리처드 니에미와 허버트 와이스버그의 계산에 따르면 유권자가 무한대인 경우(우리 대선도 사실상 여기에 해당한다) 후보가 6명이면 31.5%, 7명이면 36.9%, 15명이면 60.9%이다.
순환적 선호가 존재하는 경우 대결의 구도가 어떻게 짜여지는가에 따라 승자가 결정된다. 따라서 두가지 가능성이 생겨난다. 하나는 특정후보의 당선이나 낙선을 원하는 유권자들의 선거결과에 영향을 주기 위해 자신의 진정한 선호와는 달리 「전략적 투표」를 할 가능성이다. 또 하나는 특정후보의 당선이나 낙선을 위해 후보들이 「전략적 연합」을 할 가능성이다. 이 두가지 전략적 선택으로 빚어진 선거결과는 결코 유권자들 전체의 선호를 제대로 반영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국민들의 선호를 반영하기 위한 선거가 오히려 이를 왜곡시키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한마디로 후보의 난립은 정치적 냉소와 무력감의 증가, 연고주의의 발호, 선호의 왜곡을 가져옴으로써 선거의 의미와 기능을 축소시키거나 변질시키는 폐해를 낳을 공산이 크다. 앞으로 후보의 난립을 방지할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어야 하겠지만 그에 앞서 정치인 개인이 보다 책임있게 행동할 것을 기대한다. 특히 정책면에서 공통점이 많은 후보들은 개인적인 득실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고 정책연대를 통해 후보자의 수를 줄여 가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지도자로 자처하는 사람들이라면 개인의 작은 이익을 위해 민주주의의 커다란 가치를 손상하는 일은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우리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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