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통신망을 이용한 정치토론·투표·물건구매/2000년 전자상거래 규모 무려 65억달러 예상/전화 고해성사도 가능「전화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투표를 하고 해외 백화점에 진열된 의류를 산다. 성당을 찾아가 해야 하는 고해성사도 신부와 직접 연결해 주는 전화 서비스로 할 수 있다」
전화와 주변 기술의 발달 물결은 21세기의 시작과 더불어 우리 사회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전망이다. PC(개인용컴퓨터)와 TV의 결합, 인터넷 화폐 등 하루가 다르게 개발되는 정보통신 기술이 새 시대를 주도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변화의 핵심은 전화와 전화선, 그리고 무선통신이다.
통신망을 통해 정치토론을 벌이고 투표까지 한다는 개념의 「전자 민주주의」는 전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최근 새로운 정치무대로 평가받는 TV토론이 메시지의 일방적인 전달에 불과한 반면 전화망을 통한 전자민주주의는 그보다 훨씬 훌륭한 기능을 갖고 있다. 미국에서는 전자민주주의를 돈이 적게 드는 투명한 정치방법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투표율 제고 등 국민참여 기회 확대라는 점에서 관련 연구가 활발하다. 물론 전자민주주의의 꽃인 전화(통신)투표를 본격적으로 실시하기 위해서는 신원확인 방법 등의 기술개발이 필요하다.
전기통신기술이 상거래 등에 본격적으로 응용되면 경제구조 자체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전자금융의 발달과 은행산업의 미래」연구조사는 전화망을 통한 전자금융의 발달이 은행업무의 본질을 바꿔 놓을 것으로 예측했다. 지금처럼 수십명이 근무하는 점포가 다수의 무인점포와 소수의 소규모 유인점포로 대체되는 것은 물론이고 전체업무도 정보서비스 제공 중심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전기통신망을 통해 물건 구매 행태도 혁신적으로 바뀐다. 지난해 5억1,800만달러(4,710여억원)에 불과했던 전기통신망을 통한 세계 전자상거래 규모가 2000년에는 65억7,900만달러(5조9,800여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정부도 2001년부터 사용물품을 모두 전자상거래로 조달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일반 소비자는 대형 TV와 연결된 인터넷을 통해 국내외 상점을 검색하고 마우스나 전화로 즉석에서 신청을 하면 된다. 치수를 직접 재야하는 의류는 자신의 신체치수 데이터를 미리 입력시키면 자동으로 몸에 맞는 옷을 고를 수 있다. 지불수단으로는 은행이나 카드회사의 계좌에서 일정액을 전자화폐로 교환하면 된다.
전문가들은 전화망을 이용한 뉴미디어의 발달이 기존의 인간관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 전화선의 수만배 용량을 자랑하는 네트워크가 갖춰져 정보수집과 의사결정 모두를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면 대면접촉으로 상징되는 기존 인간관계는 송두리째 바뀔 것이다. 가정을 가치의 중심으로 하는 라이프스타일이 보편화하고 소규모 공동체가 발달하리라는 것이 기술 낙관론자들의 견해다.
전화는 종교 의식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난해 아일랜드의 한 가톨릭 교구는 전화를 통해 주교에게 신앙고백을 할 수 있는 「자유와 고백을 위한 전화」를 개설했다. 아직 반대 목소리가 많지만 TV선교사가 인기를 끌고 있는 미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전화망을 이용한 종교의식이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이상연 기자>이상연>
◎도청·개인정보유출 ‘전화’/공공목적이라도 가입자 정보공개 신중해야
전화가 진정한 「문명의 이기」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생활 보호에 대한 연구와 제도보완이 필요하다. 특히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피해가 급증하고 있는 국내의 최근 추세는 강력한 제도적 규제를 요구하고 있다.
전화를 통한 사생활 침해는 도청과 전화 가입자에 대한 개인정보 유출이 대종을 이룬다. 전화 도청은 채무자의 소재파악이나 불륜추적 등을 위한 것이 대부분인데 서울에만 수십곳의 「전문」업체가 최신장비를 동원해 영업을 하고 있다.
개인정보가 유출돼 전화 가입자가 해를 당하는 예는 도청보다 훨씬 많고 피해 범위도 넓다. 범법 행위인 도청도 대부분 개인정보 유출로 시작된다. 실제 최근 전화국 직원이 심부름센터에 팔아 넘긴 가입자의 개인정보가 도청 등에 악용된 사건이 잇달아 일어났다.
유출된 개인정보와 전화번호는 당사자에게 말못할 고통을 안겨 준다. 무시로 제품구입을 권유하는 전화가 걸려 올 수 있고 선거때면 여론조사를 빙자한 각종 여론 조작과 흑색 선전에 시달릴 수도 있다. 도청이나 자녀유괴 등 범죄의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전화번호를 무심코 공개했다가 낭패를 보는 피해자도 많다. 부동산이나 중고물품 거래를 위해 한 생활정보지에 전화번호를 게재했다가 다른 정보지가 무단으로 베껴싣는 바람에 거래가 끝난 후에도 전화공세에 시달리는 일이 허다하다. 신용카드 신청이나 백화점을 이용하기 위해 제공한 개인정보가 해당 회사의 다른 계열사로 유출돼 피해를 보기도 한다. A신용카드사에 전화번호와 개인정보를 제공했다가 계열사인 A생명보험사로부터 끈질긴 보험가입 권유 전화를 받는 경우 등이다.
전문가들은 형사사건 수사 등 공공목적을 위한 것이라 해도 전화 관련 개인정보는 신중히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유선전화는 물론 휴대전화, 무선호출기의 모든 통신내역이 수사기관의 요청만 있으면 아무런 제재 없이 공개될 수 있다는 것. 실제 한보사건 국정조사때 일부 관련자의 휴대전화 통화내역이 여과없이 공개돼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국민회의 김영환 의원(통신과학기술위원회)은 『사생활 보호에 앞장서야 할 공공기관이 오히려 사생활 침해를 방조 내지 조장한 경우가 너무 많다』면서 『당국이 수사상의 편의만을 추구하다 무고한 시민의 사생활을 침해할 때 이를 적극적으로 구제할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상연 기자>이상연>
◎전화는 ‘민심 청진기’/대선후보지지도 조사 등 여론 반영/허위답변·높은 통화거절률은 맹점
전화가 민심을 움직인다. 요즘 언론매체에 자주 오르내리는 대선후보 지지율 여론조사는 거의 전화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바람직한 대통령의 재산 상태나 나이, 건강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치가 전화선을 타고 모여 든다. 전화가 민심의 흐름을 읽는 청진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원래 여론조사는 1,500명 내외의 표본 집단을 상담원이 일일이 찾아 가 조사해야 신뢰도가 높다고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는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점에서 전화조사가 절대 주류가 돼 있다.
이런 전화 조사는 어떤 사건에 대한 여론의 해석을 그때 그때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반면 응답자의 신원이 노출되지 않기 때문에 허위답변이나 통화 거절률이 높은 맹점도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조사기관의 축적된 노하우와 상담원의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예고 없는 전화에 대한 응답자의 거부감을 덜기 위해 20, 30대 여성이 주로 조사를 맡는다. 통화 시간은 대개 5분을 넘기지 않으며 직장인들의 귀가시간을 고려해 오후 6시 이후에 조사가 집중된다.
전화조사는 핵심 사항과 거리가 먼 질문부터 시작해 서서히 본론으로 접근하는 방식으로 행해진다. 통화가 끝나갈 무렵 상담원이 핵심 질문을 던지며 반드시 두 번 이상 거듭 물어 답을 확인하는 게 원칙이다. 응답자가 서술적인 답을 꺼릴 경우 보기를 알려 준 뒤 선택하도록 하기도 한다. 이 경우 「보통이다」 「그저 그렇다」 등의 애매모호한 보기는 되도록 들지 않는다.
이런 과정을 거친 전화조사의 정확도가 점점 높아지자 각 정당 및 정파는 선거를 앞두고 자체 전화조사 기구를 설치하기도 한다.
일반 기업도 시시각각 변하는 소비자들의 의식을 전화조사로 짚어 마케팅자료로 활용하기도 한다. 브랜드 이미지, 제품의 색상과 디자인, 경쟁사제품과의 비교 등이 주된 점검 대상이다.
이렇게 전화조사는 흘러가는 여론을 따라잡아 진단하는 최적의 도구로 자리 잡았다. 아직은 면담조사에 비해 정확도가 떨어지는 등 「얼굴없는 소리」의 한계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으나 화상통화가 본격화할 21세기에는 전화조사가 유일한 여론조사로 남을 것이란 전망까지 나와 있다.<염영남 기자>염영남>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