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이 한밤중인 듯이 캄캄했다. 벼락이 치고 폭우가 쏟아졌다. 그제 오후의 일이다. 거리 곳곳에 신호등이 작동을 멈추고, 정전 사고도 잇달았다 한다.기상의 갑작스러운 이상은 순간적일지라도 사람의 마음을 쳐서, 숙연하게 한다. 천둥번개 속에서 두려움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경우도 있고, 대낮의 암흑을 보면서 세상의 대재앙을 걱정하는 경우도 있다. 돌풍이 일고 우박이 떨어지고 날이 갑자기 어두워지는 현상은, 아무튼 겁나는 일이다.
인도네시아 여러 섬의 열대우림은 벌써 두달 째 불타고 있다는 소식이다. 단순한 삼림화재로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이웃에 있는 여러 나라들에 연기를 몰아보내 「숨쉬기 조차 어려운」상태를 만들고 있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연기로 인한 호흡기 고장으로 이미 곳곳에서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고, 앞으로 수천명의 사망자 발생이 예견되고 있으나, 화재와 연기의 피해 범위가 얼마나 더 계속되고 확산될 것인지는 짐작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어둠침침한 도시에서 저마다 마스크를 쓰고 길을 나서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신풍경이야 말로 세기말적 환경재해를 표현하는 극적인 모습이다. 환경재해에는 국경이 없다는 점, 원인제공자와 무관하면서도 피해자가 되고 그 피해정도도 크고 심각하다는 사실을 이번 삼림화재는 아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인도네시아 삼림화재 지역은 국제적 감시기구들의 견해로는 현재 80만㏊에 이른다고 한다. 이른바 엘니뇨 현상으로 인한 50년만의 가뭄에, 벌목회사와 화전개발에 나선 대농원들의 무분별한 방화가 겹쳐, 대화재로 확산되었다고 본다. 문제는 화재로 인한 삼림의 손실이라는 눈앞의 피해가 전부는 아니라는 점이다.
가령, 핵전쟁을 인류절멸의 대파국이라고 보는 이유는 핵폭발의 열풍과 방사능으로 인한 한순간의 대량살륙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핵폭발이 만든 검은 연기가 두꺼운 구름이 되어 태양광선을 가리고, 그로써 지구상에 더 이상의 광합성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몇달 안에 지구상의 기온이 영하 수십도의 혹한으로 곤두박질하는, 이른바 「핵겨울」이 바로 인류와 지구의 종말을 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림화재도 불과 연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기상재해에 직결된다는 점이 인식되어야 한다. 인간을 향한 자연의 「보복」이 예비돼 있다는 뜻이다.
삼림은 본래 나무들의 단순한 집합체가 아니다. 스스로가 이룩한 온전한 생태계, 그 자체이다. 가장 중요한 기능은 대기중의 탄소를 흡수해서 지구온난화의 추세를 억제하는데 크게 기여한다는 점이다. 만약 삼림이 사라지면 지구상의 강우량이나 기온, 풍속 등 모든 기상현상에 변화를 가져오게 되고 인간의 생존조건을 파괴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특히 삼림을 불태워 없애면 탄소가 그대로 대기중에 방출돼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한다.
북한의 해를 이은 홍수 피해가 옥수수를 심는다며 모든 산지를 갈아엎어 개간한 다락밭에 원인이 있음은 알려진 일이다. 방글라데시의 연년이 되풀이되는 대홍수 피해가 히말라야 산록의 숲이 황폐화한 이후의 일인 것도 증명된 기상재해에 속한다.
전문가들은 인도네시아의 삼림지대가 이탄층이 광범하게 형성된 지표위에 있어 「불이 땅속으로 옮겨 붙는」특징이 있다고 한다. 칼리만탄 지역에서는 82년에 6개월동안 360만㏊를 불태운 선례가 있는데 그것도 이런 「지중화」현상 탓이었다는 것이다. 큰 비가 집중적으로 내려 땅속까지 스며들지 않는 한 인도네시아 삼림화재는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이고, 이웃나라들로 넓게 퍼져가는 연무피해 또한 쉽게 걷히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여기서 생각을 바꿔보자. 한낮의 캄캄한 어둠은 무엇에 대한, 무엇의 「보복」인가. 또는 무엇의 「전조」인가. 동남아시아가 아니라 서울의 하늘에는 지금 어떤 연무가 가득 시야를 가로 막는가. 12월 대선을 앞둔 집권 여당에서 안개처럼 스물대는 「10월 대란」설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의 필사즉생, 그의 가슴에 붙은 불의 결단은 무엇인가.
그렇게도 보기에 좋던 당내경선의 「역사에 남을 일」을 뭉개버린 채, 자멸의 나락으로 빠지는 신한국당의 모습에서 한국정치사의 좌절을 또한번 목격하면서, 국민은 지금 한낮의 암흑을 보듯이 가슴이 답답하다.<심의실장>심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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