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여파속 조세부담 사상 최고치/농어촌·교육공약위해 곳곳 무리수내년도 예산안의 가장 큰 특징은 대선공약을 지키기 위해 국민부담을 늘렸다는 점이다. 엄밀한 세수전망을 토대로 예산을 짠 게 아니라 쓸 돈을 미리 정해 놓고 세금을 맞추었다. 그러면서 일반회계와 재정융자특별회계(재특)를 합한 총예산 증가율을 5.8%로 낮춰 정부가 허리띠를 졸라매는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여론을 감안, 내년예산을 「긴축」으로 포장한 것이다.
선심성 예산배정은 농어촌구조개선사업과 교육투자에서 두드러진다. 당초 경기불황의 여파로 내년에도 세금이 잘 안 걷힐 것으로 본 정부는 이들 분야의 예산을 각각 1조원 가량 삭감한다는 방침이었다. 농어촌구조개선사업의 경우 재정경제원의 의뢰에 따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평가한 분야다. 그러나 「대선승리 우선」이라는 정치권의 요구에 굴복, 농업관련예산을 단 한푼도 깎지 못했다. 이에따라 상대적으로 다른 부문의 투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또 교육재정 확보를 위해 교육세를 10% 인상하고, 지방자치단체로 하여금 1조원 규모의 지방채를 발행토록 했다. 교육세를 10% 인상하면 5천억원의 세금이 더 걷힌다. 지방채 발행은 자칫 중앙정부가 부담할 수도 있는 만큼 적자 재정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뿐만 아니다.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위해 등유 경유에 대한 교통세 탄력세율도 30%로 높였다.
교육세와 교통세인상은 국민은 물론 업계의 부담을 늘리기도 하지만 세무행정의 흐름에도 역행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교육세가 붙는 세목들은 경감하거나 폐지해야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국민 한사람당 조세부담액은 올해 1백95만7천원(전망치)에서 내년에는 2백17만2천원으로 21만5천원이 늘고, 조세부담률은 사상 최고수준인 21.4%에 이르게 된다. 올해 경기불황으로 사상 최대규모인 3조4천억원의 세수가 부족해 감액추경예산까지 편성한데다 내년도 세수 전망도 그다지 밝지 않은 상태여서 예산집행을 위해 세부담을 늘릴 소지도 있다.
또 내년 예산 증가율 5.8%는 84년이후 최저수준이기는 하나 이는 갖가지 묘수가 동원된 결과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정부가 당초 부실채권정리기금에 출자하려던 5천억원을 산업은행의 현물출자를 통한 우회융자로 전환키로 한 것이다. 이로 인해 예산증가율이 0.7%포인트 줄어 들었다.
이러한 편법 세금인상과 숫자놀음은 공무원 봉급인상률 3% 억제, 일반직 공무원 1천8백명 감축 등 공공부문의 긴축의지를 희석시킨다. 전문가들은 『정리논리에 의해 배정된 예산은 예산구조를 왜곡시키고 지속적인 예산낭비를 초래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해 공식확인된 예산낭비가 국민 한사람당 1만원꼴로 나타났다. 국회 심의과정에서 예산안이 얼마나 꼼꼼히 점검될지 주목된다.<정희경 기자>정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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