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나는 꼬부랑 할머니를 본 기억이 없다. 병원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심지어 경로당에서도 보지 못했다. 정말,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은 눈에 띄게 여성을 건강하게 만들었다. 몇 십년전과 달리 환갑, 고희를 넘겨도 허리가 반듯한 할머니를 만날 뿐이다. 더하여 의학의 발전은 여성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첨단의학의 혜택이 모조리 여성에게 쏠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뼈가 흐물해진 여성들도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호르몬 치료를 받아 튼튼하게 바꿀 수 있으니 말이다.그러나 그보다 큰 공헌은 우리의 생활 양식에서 일어났다. 성생활에 대한 사고가 바뀌면서 여자들은 쉽게 다산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더구나 모유로 수유하는 기간도 줄어 이제는 출산한 여성도 처녀에 버금가는 몸매를 자랑하게 되었다. 마침내 여성은 늙지도 않고 늙더라도 싱싱한 수퍼 우먼으로 다시 탄생된 것이다.
바야흐로 몸매 만으로 실제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의 생각보다도 빨라 여성들 자신도 따라잡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래서 간혹 처녀 같은 아줌마가 젖을 먹이기 위해 가슴을 훤히 드러내어 오히려 주위 남자들을 놀라게 만들기도 한다.
흉부외과 의사인 나도 당황할때가 있다. 언제부터인가 더러 실수 아닌 실수를 하여 나이를 꼭 확인하는 습관까지 생겼다. 가슴을 청진하면서 『생리는 규칙적으로 하시는가요』라고 물어보면 『의사양반, 나 끝난지 스무해 다 됐어』라고 답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유난히 더웠던 올해 여름, 예순이 넘은 할머니가 가슴 안에 고름이 차는 농흉으로 입원한 적이 있다. 나는 여느 때처럼 가슴사진만 보고 고름을 빼내는 수술을 들어갔는데 나중에 실제 나이를 보고 놀랐다. 그래서 「요새는 할머니 가슴도 저렇게 예쁠 수 있구나」 생각하였다. 며칠이 지나 완쾌되었고 나는 할머니에게 퇴원전에 실밥을 뽑아 주기로 약속을 하고는 깜빡 잊었다. 퇴원하는 날 회진을 끝내고 내려가려는데 어디선가 『선생님, 나, 실밥 안뽑아줘?』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그 할머니가 한쪽 가슴을 드러낸 채 나를 향해 돌진해 오고 있었다. 간호사는 당황해 『할머니, 옷 내리세요. 다른 사람이 다 봐요』라며 앞을 가로막았다. 대뜸 대답이 나왔다. 『나 할매야, 할매 가슴, 누가 본다구…』 나는 가슴에 있는 실밥을 뽑아주며 말했다. 『할머니 그러지 마세요. 아직까지는 볼만합니다』
김응수씨는 한일병원 흉부외과 과장이다. 58년 대구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랐으며 지금은 어머니, 중학교 국어교사인 아내, 딸 둘과 서울 도봉구 창동에서 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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