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던 공무원 집에서 1억5,000만원의 현금이 나왔다. 50대 초반의 4급 공무원이라고 67평 아파트에 살지 말라는 법은 없으나 장롱속에 억대의 돈뭉치를 숨겨두고 있던 것은 그냥 보고 넘길 일이 아니다. 검찰은 혐의공무원을 데려다 조사했으나 본인이 빌린 돈이라고 수뢰혐의를 부인하고 명백한 증거도 없어 일단 귀가시켰다 한다. 그러나 그는 다음 날 종적을 감추어 2주일이 넘도록 직장에도 연락이 없다.검찰은 관련업자들에게서 그 돈의 반 이상이 그가 서울국토관리청 재직할 때 국도 확장공사 등과 관련해 준 뇌물성 자금이라는 진술을 받았다 한다. 수사의 단서가 된 것은 1,000만원 수뢰혐의였는데 캐보니 다른 업자들에게서도 많은 돈을 받은 혐의가 드러난 것이다. 뇌물 받기가 얼마나 일상화됐으면 제대로 수사도 하기 전에 다른 혐의들이 고구마덩굴처럼 줄줄이 딸려나왔을까. 관청일에는 공짜가 없다는 시중의 불평들을 이제는 당국이 사실로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수사진에 따르면 토목업계에는 도로 포장공사에서 아스팔트 두께를 1㎝만 얇게 깔도록 눈감아주어도 몇억원의 돈이 왔다갔다 한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가능하면 견고하고 튼튼한 도로가 되도록 부실공사를 감독하고 신공법 새 기술을 권장해야 할 공무원이 부실을 눈감아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아 장롱속에 쟁여놓았다면 국민의 혈세를 소매치기한 것과 다름없는 짓이다.
이번 사건에서 또 하나 개탄할 일은 같은 수사망에 걸려든 충북부지사가 무너진 성수대교 복구공사와 당산철교 철거 재시공과 관련, 잘 봐준다는 조건으로 업자에게서 1,600만원을 받은 사실이다. 기술직 공무원으로는 최고위직(1급)인 그는 93년 10월부터 올해 5월까지 서울의 각종 시설물 공사와 관리의 안전업무를 총괄하는 서울시 건설안전관리본부장 자리에 있던 사람이다. 94년 10월 성수대교 붕괴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사고였는데 그 와중에 복구공사를 잘 봐준다고 돈을 받았으니 펄펄 끓는 국민여론에 침을 뱉은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다.
이번 사건 관련 공직자수는 단일사건으로는 사상최고인 22명이나 된다. 겉으로 깨끗한 정부와 공직자 부패 척결을 외치는 동안 위로는 시장과 부지사에서 밑으로는 과장 계장 평직원에 이르기까지 공조직이 총체적인 비리구조에 젖어 있음을 이번 사건은 보여주었다. 그런데도 검찰은 수뢰액수가 상대적으로 적고 행정공백이 우려된다는 등의 이유로 수뢰 부지사와 시장들을 불구속 수사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번 수사에서 8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하급직 공무원도 있다.
그러나 이른바 「노른자위」 4급공무원집에서 나온 1억원 뭉치는 앞으로 검찰수사가 어떠한 방향으로 가야 할지를 너무나 극명히 제시하고 있다. 그간 수없이 되풀이해 온 일망타진―유야무야의 되풀이로는 이 뿌리깊은 공직비리구조를 발본할 수 없다는 각오로 수사에 새롭게 임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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