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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철 솔향기가 갯바람과 만나는 땅/안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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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철 솔향기가 갯바람과 만나는 땅/안면도

입력
1997.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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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여나 예년보다 일찍 왔던 추석, 햇곡을 수확할 틈도 없이 다가왔던 한가위 연휴도 어느새 훌쩍 지나버렸다. 이제는 몸과 마음을 익어가는 알곡처럼 추스려야 할 때. 가까운 곳으로의 여행길은 그같은 결실을 향한 나들이다. 살 오른 바닷고기들이 노을 물든 수평선에 몸을 뒤채는 낙조의 시간, 황금빛으로 벼가 여물어가는 들판, 고추 익는 밭둑길에 무심한듯 피어 있는 계절의 전령 코스모스. 굳이 먼 바다를 찾지 않아도 이 모든 것들은 서해에 있다. 감추어져 있던 보석 같은 서해의 섬 안면도로 가보자. 사철 안면송의 솔향기가 갯바람과 조우하는 땅, 대하와 바지락과 고추와 마늘이 섬사람 인심마냥 철마다 풍요로운 곳, 안면도 가는 길에는 가을이 무르익어간다.○섬 아닌 섬

한국에서 여섯번째로 큰 섬인 안면도는 원래 섬이 아니었다. 조선 인조 때(1638년) 공물수송을 원활히 하기 위해 운하를 뚫느라 허리가 잘려버렸던 태안반도의 끝자락이다. 이제는 육지와 연결되는 긴 다리가 두 개나 놓여 다시 태안 땅과 연결됐지만 안면도는 또 한번 어둠 속으로 묻힐뻔한 위기를 맞는다. 아직 기억에도 생생한, 91년 원자력발전소 건설 예정지로 내정되면서 불거졌던 주민의 반대운동. 안면도 땅을 밟으면 왜 그토록 주민이 개발보다는 자연 그대로를 원했는지를 알 수 있다. 예산과 덕산을 거쳐 안면도 가는 길에 만나는 간월도는 거꾸로 섬에서 육지로 변해버린 경우다. 80년부터 15년간 계속된 천수만A, B지구 방조제 건설사업으로 4,700여만평에 달하는 바다가 매립되면서 간월도는 이름만 남은 섬이 된 것이다.

○간월도

간월도에는 그래도 섬의 흔적은 남아 있다. 간월암이 자리잡고 있는 작은 돌섬을 지금은 간월도라 부른다. 이 돌섬은 제부도 같은 서해의 다른 섬처럼 들물이면 섬이 되고, 날물이면 육지와 연결된다. 한때 전국 굴 생산량의 90%를 차지했다는 어리굴젓의 산지임을 기념, 아낙네들이 호미를 들고 굴을 따는 모습의 조형물과 「간월도 어리굴젓 기념탑」이 서있는 한켠으로 서해를 눈 아래 내려다보고 있는 간월암에는 유서 깊은 사연이 깃들어 있다. 요즘 한창 인기 있는 TV극 「용의 눈물」에도 가끔 등장하는 조선개국의 숨은 공로자인 무학대사, 인근 서산이 고향인 그가 수도하던 곳이 바로 이 암자인 데 어느날 홀연히 서해의 달을 보고(간월) 도를 깨우쳤다 하여 암자의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이다.

○꽃지와 바람아래

꽃지와 바람아래. 까마득히 잊고 있던 누이동생의 이름 같기도 하고 옛친구의 애칭 같기도 한 아름다운 우리말. 모두 안면도의 지명이다. 안면도에는 아직 이런 땅이름이 많이 남아 있다. 샛별, 쌀썩은여, 밧개, 곰섬…. 길 가다 만난 주민에게 유래를 물어보면 누구나 구수한 사투리로 대답해 준다.

꽃지와 바람아래는 이들 중 손꼽히는 안면도의 경관지역이다. 섬의 중간쯤 안면읍 서쪽 해안에 자리잡은 꽃지에는 안면도 최대의 해수욕장이 있다. 섬 서쪽 해안을 따라 10개가 넘는 해수욕장들이 줄지어 있는 안면도지만 꽃지는 그중에서도 최고로 손꼽힌다. 해운대 저리 가랄 정도의 긴 백사장, 완만한 수심의 해안, 아득한 수평선의 낙조는 사람 붐비는 여름보다 오히려 가을에 운치를 더한다. 해수욕장 오른편으로 보이는 할아배·할매바위는 서글픈 전설이 서린 곳이지만, 지금은 그 전설을 배경으로 열심히 사진을 찍는 젊은 커플들이 늘 붐빈다. 바람아래는 한적한 우리 어촌의 본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가을엔 「적요」라는 말이 어울린다. 한 주민은 최근 개봉된 영화 「마리아와 여인숙」이 여기서 촬영됐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가까운 고남리에는 「해변시인학교」가 들어서 해마다 여름이면 많은 시인과 일반인들이 찾아온다.

○안면송

꽃지와 바람아래를 거쳐 섬의 최남단 영목항까지 가는 드라이브 길에 나그네의 눈길과 가슴을 온통 사로잡는 것은 역시 안면도 소나무, 안면송의 위용이요 향기이다. 안면도는 섬 전체가 국내에서 가장 잘 보존된 소나무 군락지다. 조선시대부터 인공적으로 소나무를 조림해 순수 국내산 소나무의 혈통을 지켜왔다. 경복궁의 기둥도 이 안면송으로 세웠다.

우리 땅에 어디 이런 소나무가 있었나 싶게 하늘로 하늘로 죽죽 뻗은 붉은 적송들이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큰 길가는 큰 길가대로, 멀리 나즈막한 산자락에는 그대로 또 온통 뒤덮고 있는 소나무숲과 그 향기만으로도 안면도행은 보상받고 남는다. 승언리 「자연휴양림」은 산림전시관과 바다로 트인 전망대, 통나무집들을 갖추고 있어 가족단위 휴양객이 이용하기에도 좋다.

○백사장어항

한낮 가을햇볕을 만끽하며 안면도의 바다와 육지를 돌아보았다면 저녁에는 길을 되밟아 섬 초입에 있는 백사장어항으로 가보자. 안면도의 밤이 살아 꿈틀거리는 곳이다. 펄떡이는 서해산 대하(왕새우)를 막 부려놓은 새우잡이 배들이 대낮처럼 불을 환하게 밝혀놓고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갓 잡아온 대하를 좌판에 내놓고 손님과 흥정하는 아낙들의 목청이 줄지어 선 대하요리집들에서 풍겨나오는 구수한 새우 굽는 냄새, 어부들의 땀내음, 비릿한 갯가 포구 냄새와 어우러져 안면도의 냄새를 숨가쁘게 내뿜는 곳이다. 대하는 고추와 함께 안면도의 특산물이다. 9월부터 겨울까지가 본격 대하 철이다. 백사장어항 좌판에서 흥정해 싼값에 사서 석쇠에 구워먹는 맛을 즐겨야 안면도에 갔다 왔다고 할 수 있을 정도. 바닷가 언덕 야트막한 밭뙈기에서 익어가는 고추, 가을이 깊어가면서 섬 어디서나 길가에 내다 말리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이 빨간 고추와 빨갛게 구운 대하, 붉은 안면송, 저물녘 해변의 낙조는 안면도의 가을을 온통 주홍빛으로 함께 물들이는 것들이다.

○안면교의 낚시

안면도와 육지를 잇는 다리는 두 개다. 왕복 2차선의 구 안면교가 포화상태가 되자 왼쪽 편으로 새 다리가 하나 더 놓였다. 짧은 여정이나마 안면도를 느끼고 돌아오는 길에는 구 안면교를 한번 이용하는 것도 좋다. 운 좋으면 다리를 가득 메우고 바다낚시를 즐기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다리 아래로 낚싯줄만 늘어뜨려 놓으면 백조기라고도 하는 보구치, 우럭에다, 물때 맞으면 감성돔까지 올라온다. 낚시는 안면도 어디서나 즐길 수 있다. 천연기념물 제138호인 모감주나무(열매는 염주알을 만드는데 쓰인다) 군락이 있는 방포해수욕장 옆의 방파제 등도 좋고, 조금만 배를 타고 나가면 안면도 앞바다는 어디나 확실한 조과를 안겨준다. 민물낚시를 즐긴다면 안면도 곳곳의 수초 가득한 수로와 저수지들은 그 또한 다른데서는 그만한 손맛을 맛볼 수 없는 오염되지 않은 천혜의 낚시터이다. 안면도는 그렇게 아직 자연으로 살아 있다.<안면도=하종오 기자>

◎가는 길/수덕사 등 문화유적 둘러보면 또다른 즐거움

안면도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지 않다. 주말여행으로 안면도의 모든 것을 즐기기는 아쉽다 하는 감은 들지만 그래도 조금만 길을 서두르면 충분하다. 여유가 있다면 느긋하게 수덕사 등 오가는 길의 문화유적과 경관을 둘러보는 것도 안면도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경부고속도로 천안인터체인지를 빠져나와 천안―온양―예산(21번 국도)―덕산(45번 국도)―수덕사―갈산(622번 지방도)―간월암―안면도로 가는 길이 낫다.

수덕사는 안면도 가는 길 문화유산 답사코스의 백미이다. 덕숭산 자락의 수덕사는 경허, 만공 스님과 비구니 일엽 스님이 수도한 도량. 국보 제49호인 대웅전의 뛰어난 건축미, 그 소박하고 단아한 미는 우리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한다. 수덕사로 가는 622번 지방도로 들어서기 직전에는 윤봉길 의사 고택과 기념관이 있고 갈산 인근에는 한용운 김좌진 등 이 고장 출신 선인들의 유적지가 있다. 예산을 지나 나오는 덕산온천은 오가는 길에 피로를 풀기에 안성마춤이다. 수덕사를 나와 간월호에 이르는 길은 우리 가을 들녘의 아름다움을 실감할 수 있는 드라이브코스이다.

천수만A, B지구 방조제는 바다와 육지에서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한꺼번에 맞으며 시원하게 달릴 수 있는 코스. 거대한 간월호에는 붕어·잉어낚시꾼들이, 서해 쪽으로는 바다 낚시꾼들이 낚싯대를 휘두르고 있는 것도 진풍경이다.

안면도 가는 길에 이 코스를 택했다면 돌아갈 때는 안면도―창리―서산을 거쳐 당진―삽교―둔포―평택으로 길을 잡으면 충남내륙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다.<하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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