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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한국일보 창간 30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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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한국일보 창간 30돌

입력
1997.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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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 첫 교포지… 한인사회 구심 ‘우뚝’/구독부수 100배 증가/NYT 한국어판 등 보도의 지평 넓혀/교포의 눈과 귀 역할뉴욕 한국일보가 25일로 창간 30주년을 맞았다. 뉴욕 한국일보는 미국은 물론 전세계 교포사회에서 발행된 최초의 한국계 일간지로 한국 언론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창간일을 계기로 뉴욕 한국일보의 30년을 되돌아 본다.<편집자 주>

뉴욕 한국일보 30년은 우리나라의 미국 이민사와 궤를 같이한다. 뉴욕 한국일보는 지난 30년동안 한인사회의 형성과 정착, 성장발전 과정에서 동고동락하며 역사의 산증인 역할을 다했다.

뉴욕 한국일보는 뉴욕 일대에 교포가 고작 3,000명 남짓하던 67년 9월25일 맨해튼의 대한중석건물 3층에서 문을 열었다. 한국언론 사상 처음으로 취재망과 보급망을 해외까지 연장하며 보도의 지평을 넓힌 개척정신, 그것은 한국일보만의 자랑으로 남아있다.

창간 당시 뉴욕 한국일보는 서울에서 비행기로 보낸 한국일보를 옵셋 인쇄기로 66% 축소인쇄, 독자들에게 고국 소식을 전해주는 등 국제화 시대를 선도했다. 유학생과 유학생 출신 사업가들이 대부분이었던 독자 125명은 창간 첫달부터 구독을 신청, 고국 소식에 대한 목마름을 적셨다. 가판부수까지 합치면 300부가 넘어 가구당 4명을 기준으로 볼 때 뉴욕 교포의 절반 가까이가 당시 한국일보를 애독한 셈이다.

한 세대가 지난 지금 뉴욕 한인 사회는 규모면에서 창간 당시보다 100배 이상 늘어나 40만명을 웃돌고 있다. 한인사회와 함께 10년 단위로 정착기와 성장기, 그리고 안정기를 겪은 뉴욕 한국일보도 질과 양적인 면에서 눈부시게 발전했다. 구독자와 가판부수는 창간때보다 100배나 증가했으며 뉴욕 현지판도 사회, 종교, 교육, 건강, 여성, 문화면 등 매일 24면을 발행한다.

뉴욕 한국일보는 창간 4년만인 71년 12월 격주로 현지판인 「뉴욕소식」을 본국지와 함께 발간했으며 74년 8월 고성능 윤전기를 도입해 자체 인쇄를 시작하며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75년이후 미국 이민이 급증하면서 더욱 활기를 띠게 된 뉴욕 한국일보는 한인사회를 심층취재하는 것은 물론 한인관련 정책의 문제점 등을 날카롭게 지적, 미국 정책입안자들에게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뉴욕 한국일보는 이후 창간 10돌째인 77년 3월 퀸즈의 현 사옥을 구입하면서 현지판인 「뉴욕한국」을 매일 발행, 명실상부한 교포 일간신문으로 자리매김했다. 86년 7월부터는 서울의 본국지를 인공위성으로 전송받아 태평양을 사이에 둔 거리를 극복하고 한국과 같은 시간에 고국소식을 전해주고 있다. 뉴욕 한국일보는 또한 한국에서는 침묵해야만 했던 80년 5월의 광주민주화운동 등을 생생히 보도, 신문의 사명과 책임을 다했다. 국제화 물결이 몰아친 93년에는 세계 유수의 신문인 뉴욕 타임스와 한국어판 서비스 특약을 맺었으며 이듬해 2월부터 뉴욕 타임스 한국어판을 독립 발행하고 있다.

한편 뉴욕 한국일보는 96년 10월 한국일보 LA 미주본사가 경영권을 인수하면서 제2의 창간이라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뉴욕 한국일보는 한국과 세계를 연결하는 한국일보 네트워크의 일부로서 21세기를 향한 세계화 시대에 독자들의 충실한 눈과 귀가 될 것이다.<뉴욕 지사="취재부">

◎뉴욕 한인사회 30년/60년대말 3,000명선 형성/현 40만명 단단한 뿌리/의사 등 전문직 증가세

1902년 12월 사탕수수 농장개발을 위해 121명이 하와이에 첫발을 디디면서 형성된 미국내 한인사회는 현재 인구 153만명으로 추산되는 거대집단으로 발전했다. 규모면에서는 중국(192만 추산)에 뒤지지만 영향력과 고국과의 관계 등에서 볼때 소수민족 사회의 표본으로 성장했다.

한인들은 로스앤젤레스 일대에 50만명, 뉴욕·뉴저지 일대에 40만명이 거주한다. 뉴욕 한국일보 창간 당시 3,000명에 불과했던 뉴욕 한인사회는 뉴욕의 정평있는 주간지 「뉴욕」이 『다방면에서 지도적 위치의 민족으로 자리잡았다』고 극찬할 정도로 뿌리를 단단히 내렸다. 특유의 근면 성실한 생활자세로 「노력한 만큼은 얻는다」는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뉴욕 한인사회는 70년대 한국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따른 미국시장 개척과 대미 수출 드라이브 정책에 힘입어 한인 경제권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창간 당시 100개를 훨씬 밑돌았던 한인업소는 80년대 중반 1만개를 넘어섰으며 86년에는 교포은행인 「브로드웨이 내셔널 뱅크」가 설립됐다. 한국은행과 외환은행 단 2개만이 뉴욕 사무소를 운영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13개 은행이 진출해 있다. 또 이민 세대의 60% 이상이 대졸일 정도로 교육율이 높은 한인사회에는 전문직 종사자도 매우 많아 뉴욕시에서만 8,300여명이 의사 변호사 공인회계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뉴욕 한인사회는 양적인 팽창에 못지않게 우리의 전통을 적극 계승해 나가면서 내실을 다져왔다. 유달리 강한 민족의식은 한인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결속을 다지는 데 밑거름이 됐다. 한인 2세들의 미국 주류사회 진출도 최근들어 급격히 늘어나고 있어 뉴욕 한인사회는 21세기에도 중단없는 도약을 계속해나갈 전망이다.<뉴욕 지사="이원호" 기자>

□뉴욕주지사·시장 축하메시지

◎조지 파타키 뉴욕주지사/“봉사정신에 경의”

『뉴욕 한국일보 창간 30주년이라는 뜻깊은 행사에 관계자 여러분들께 축하 메시지를 보내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뉴욕주 별칭)에는 우리주의 번영과 다양성, 그리고 개선되는 상황을 매일 전해주는 많은 언론매체가 있습니다. 뉴욕 한국일보는 뉴욕과 미 북부 지역에 퍼져있는 한인사회를 상대로 성공적이고도 충실한 언론의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창간 기념일을 맞아 여러분들이 30년동안 보여준 언론적 전문식견과 봉사정신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한편 뉴욕 한국일보가 앞으로도 계속 성공하기를 기원합니다』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공동체 발전 기여”

『뉴욕 일대에서 가장 큰 한국어 일간신문인 뉴욕 한국일보 임직원들과 독자들에게 축하인사를 전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뉴욕 한국일보의 창간 30주년을 축하할 수 있게 된점은 저에게도 경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30년동안 뉴욕 한국일보는 독자들에게 한국과 미국은 물론 전세계에서 벌어지는 중요한 정보들을 제공함으로써 한인들이 우리 공동체 발전에 기여하는 성원이 되도록 도와왔습니다.

모든 뉴욕시민과 함께 뉴욕 한국일보가 지속적인 발전을 이룩하기를 기원합니다』

◎특별기고/구삼열 UNICEF 총재고문·전 AP통신기자/한·미 가교 「뉴욕 한국일보」

교포언론은 우리들에게 한국과 미국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량역할을 해준다. 이 다리를 통해 많은 이들이 미국을 사는 지혜를 얻고 우리가 아끼고 간직하고 싶은 문화와 가치관을 가꾸며 산다.

뉴욕 한국일보는 인터넷이나 한국어 TV, 라디오조차 없던 30년전 창간되어 참으로 많은 일을 해왔다. 한국소식을 전하며 많은 이민 1세들의 향수를 달래주고 「지방판(뉴욕 현지판)」으로는 한인사회의 구심점이 되어 왔다. 또 앞으로의 30년을 위한 새로운 방향설정에도 노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한인사회는 100년사 가운데 30년이라는 본격적인 이민역사를 가지면서 40만이라는 인구팽창과 더불어 지구가 하나가 되는 세계화 시대를 맞고 있다. 이를 위해 한인 언론이 공익을 추구하는 매체로서 담당해야 할 역할과 사명은 실로 지대하다 하겠다.

한인언론은 위성으로 본국지를 한인사회에 제공, 본국내의 소식을 광범위하게 전달해왔다. 그 결과 경제계에서는 성공적인 기업가를, 문화· 교육면에서는 재능있는 우수한 예술가를, 그리고 우수한 젊은이들을 배출했다. 또한 생업을 위한 구직안내 이외에도 스포츠와 레저, 부동산 면을 통해 교포들의 미국생활 적응을 돕는 길잡이 역할을 담당해왔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고수하며 미국사회 적응이 쉽지 않은 1세 남녀들과 노인층의 소외감과 이질감을 해소시켰으며, 고유 예절에 대한 중요성을 2세들에게 고취시켰고 1세와 2세들 사이에, 그리고 미국사회와 한인사회에서 겪게 되는 문화, 인종갈등 등을 해소시켜주는 가교역도 맡았다.

특히 미국 사회속에 자라나는 2세들을 위해서는 계몽기사로 이들을 좋은 방향으로 선도했으며 꿈을 길러줄 수 있는 이야기와 성공담을 곳곳에서 많이 발굴, 이 땅에서 청소년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디딤돌이 되어왔다. 뿐만 아니라 이들 2세들이 코리언 아메리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기사에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 세계인으로서 활동무대에 당당히 서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하는 등불역이 되어왔다. 특히 단체들이 하는 각 종목의 활동들도 적극 지원, 교포들의 친목 및 연대강화를 꾀해왔으며 언론사별로 교포들을 위한 사업도 여러 형태로 전개, 한인사회 주도적 역할로 커뮤니티 발전에 이바지했다.

이처럼 현지에 있는 한국, 중앙, 조선, 세계 등 4개 일간지 외 라디오 TV 등 한인언론은 제한된 여건과 여러가지 취약조건에도 불구, 사회 공기로서의 사명과 역할을 다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해왔다. 이들 언론이 한인사회에 끼친 영향은 이외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21세기를 맞는 지금 한인언론은 보다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될 시점이다. 이제까지 결실을 바탕으로 국제화 시대에 걸맞는 폭넓은 기사, 진취적인 방향의 보도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를 위해 단순한 보도기능에서 탈피, 교포사회의 여론을 인도하고 계몽하며, 교육 및 문화교류에 가교역할을 다하는 광범위한 가치창출을 이루어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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