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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물과 같이/이강수 연세대 교수·철학(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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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물과 같이/이강수 연세대 교수·철학(아침을 열며)

입력
1997.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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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무병장수를 원한다. 그러나 그 일이 쉬운 것 같지는 않다. 다이애나 전 영국왕세자비는 미모와 돈과 명성을 모두 가지고 있었지만 서른 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이 세상을 하직하였다. 자이르의 독재자 모부투는 32년이나 권력을 휘두르고 엄청난 재산을 해외에 도피시켰으면서도 전립선 암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죽었다고 한다.사마천은 「사기」 「노자·한비열전」에서 『노자가 200여세까지 살았다는 설도 있지만 160여년 산 것 같다』고 말하였다. 노자를 신처럼 추앙하였던 도교의 창시자 장도릉은 122년간 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에도 그만큼 산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160년설은 아무래도 믿기지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장수한 사람으로 알려져 온 것만은 사실이다.

쉽지 않게 얻은 생명을 오래도록 지속시키고자 하는 것은 생명을 지닌 존재들의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불사약을 구해오라고 사람을 파견하였던 진시황의 뜻은 이해할 만 하다.

지난 날 중국의 생명중시 사상가들은 육신을 지닌채 이 세상에서 영생에 참여코자 하였다. 그래서 발전시킨 것이 양생술이다. 양생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오곡은 피하고 솔잎과 같은 것을 생식하는 벽곡과 영험한 단약을 제련하여 복용하는 연단술이 있는가 하면 남녀의 기를 통하게 하여 생명에 활기를 불어 넣으려는 방중술이 있다. 오늘날 많은 중국인들이 즐겨 연마하는 기공도 그 가운데 하나다. 나는 그중 도인술에 매력을 느낀다. 그것은 몸 안에서 혈액과 기가 잘 통하도록 인도하여 몸과 마음을 부드럽게 함으로써 무병장수하기를 추구한다.

어떤 사람의 몸 안에 혈액과 기가 통하지 않는 곳이 있게 되면 병들거나 암에 걸리게 될 것이다. 어찌 몸에만 병이 있다고 하겠는가. 마음의 병도 있다. 다른 사람들과 사상과 감정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 사람은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어떤 집단 안에 그러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인체 안의 암과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사물들은 나누려 들면 한없이 분열시킬 수 있다. 그래서 하나의 민족도 남북으로 갈리고 동서로 쪼개질 수 있으며, 하나의 집단도 사분오열할 수 있고, 하나의 몸도 손과 발이 따로 놀 수 있다. 그래서 장자는 말하기를 『다르다는 측면에서 보면 간과 쓸개도 초나라와 월나라처럼 멀어질 수 있다』고 하였다. 당시 초나라와 월나라는 매우 먼 거리에 있었다. 서로 다르다는 측면에서 보면 자기 몸 안에서 상호 유기적인 관계에 있어야 할 간과 쓸개조차도 멀리 떨어져 있는 남과 같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와 남, 그리고 인간과 천지만물이 통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물을 보라! 그것은 어디에나 통한다. 그래서 노자는 상선약수라 하여 가장 좋은 것으로 물을 들었다. 물은 더러운 것들을 깨끗이 씻어준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스스로 자기를 정화할 수 있는 힘을 잃지 않는다. 물이 지나가는 곳에는 생명이 꿈틀댄다. 그러면서도 다른 것들을 소유하거나 지배하려고 하지 않는다. 물은 부드럽다. 그러면서도 강한 것들을 이길 수 있다. 사람이 만약 물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면 막힘없이 유연하게 타자들과 통할 수 있을 것이다.

장자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자기의 마음을 비우고 사물의 자연스러운 성향에 따를 것을 주장하였다. 구정물이 출렁이는 세파에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사이에 우리 인간들의 마음에는 비본래적인 것들이 끼어들 수 있다. 그러면 마음에 더께가 생긴다. 마음에 낀 비본래적인 것들을 씻어내면 더께없는 마음이 된다.

사물들에는 결이 있다. 목수는 나뭇결을 찾아 그 나무를 다스리고 석공은 돌의 결을 찾아 돌을 다루고 옥을 다루는 사람은 옥의 결을 찾아 옥기를 만든다. 그 결에는 빈 틈이 있다. 그 결 속의 빈 공간이 그 사물의 핵심이다. 적어도 목수와 석공과 옥을 다루는 사람은 그러한 결을 그 사물의 핵심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천지만물에는 모두 결이 있다. 그러한 결은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천연의 결이라는 의미로 천리라고 부른다. 장자는 자기 마음을 비우고 천리에 따름으로써 인간이 천지만물과도 통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서두에서 예로 든 바 있는 모부투는 이와 다른 길을 걸었다. 그는 돈과 권력만 알았지 타자와 통하는 길을 찾지 않았다. 그는 몸 뿐만아니라 마음에도 병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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