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관급공사의 설계·감리업체 입찰 담합사건은 우리 모두에게 또한번 부실공포를 상기시킨다. 아침 저녁 이용하는 지하철은 정말 안전한 교통수단인지, 고속도로 공항 항만 교량은 믿을 수 있는 것인지…. 더구나 적발된 업체중 다수가 경부고속철도 설계와 감리까지 맡았다니 놀라움에 입을 다물기 어려울 정도이다.온 국민의 생명이 담보된 이 중요한 시설물 공사의 90% 이상이 업자들의 담합과 뇌물 먹은 공무원들의 묵인으로 업체가 선정되고, 공사비의 12∼13%를 업자들의 나눠먹기에 떼먹혔다. 그런 비리가 업계의 오랜 관행이라니 이미 완공된 기간시설 대다수가 그렇게 만들어졌다는 얘기가 아닌가.
건설전문기관의 현장 실태조사에 의하면 각종 건축·토목공사의 부실요인중 41%가 설계·감리부정이라고 한다. 설계란 말 그대로 시설물의 뼈대를 구성하는 밑그림이고, 감리란 안전보장을 위한 최후의 장치이다. 출발부터 떼먹힌 공사비의 한계 때문에 안전도가 외면된다면 그런 시설은 없는 것이 낫다.
지난해 검찰수사에서는 대규모 국책공사의 시공분야도 96.4%가 업체들의 담합으로 결정된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니 건축·토목공사의 3요소인 설계―시공―감리 모두가 구조적 부실요인을 안고 있음이 확인된 셈이다. 더욱 놀랄 일은 이 국책사업들이 성수대교 붕괴사고(94.10) 이후 발주된 공사라는 것이다. 그 사고를 계기로 정부는 얼마나 요란하게 엄정한 시공과 감리를 강조했던가. 서울 부산 같은 대도시 뿐 아니라, 전국의 중소도시들과 국영기업체 단체 기관 등에서 같은 유형의 부조리가 횡행하고 있음도 드러났다. 도대체 관계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감독자들과 감사기능은 왜 존재하는지 근본적인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뇌물받은 공무원들의 묵인으로 인한 엉터리 설계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지난 7월 안양 박달고가도로 교각 균열사고로 똑똑히 목격했다. 이 사고는 공사비를 줄이기 위한 부실설계로 시방서보다 가늘고 짧은 철근을 사용한 것이 주원인이었다. 감독자의 묵인 없이는 공사입찰 담합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들러리 입찰 전문업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공사를 딴 업체들의 하도급 재도급이 부실을 부채질하는 것은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인데 정부는 지금껏 이를 모른체 해왔다.
업계에서 주장하는 대로 기술사 절대부족이 비리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평가기준 비밀주의가 업자와 공무원의 유착을 조장하는 요인은 아닌지, 떨어진 업체들이 불평을 하지 않을 만큼 심사과정이 투명한지 이번 기회에 꼼꼼히 살펴 제도와 법령을 보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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