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준법과 불법운행 하루 수입차 3만원/어느 준법 기사의 경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준법과 불법운행 하루 수입차 3만원/어느 준법 기사의 경우

입력
1997.09.24 00:00
0 0

◎준법땐 9만원 벌어 업적금 16,800원/불법땐 13만원 벌어 합승수입·업적금 합쳐 3만여원 더 챙겨/월 26일 근무기준 최고 83만원 격차/법대로 해서는 먹고 살 수 없어요합승, 승차 거부, 부당 요금, 총알택시, 난폭운전…. 승객의 불만을 살 수 밖에 없는 이런 불법운행에 대한 택시기사들의 답변은 한결같다. 『법대로 해서는 먹고 살 수가 없다』는 것.

취재팀은 불법운행와 정상운행의 수입차이가 얼마나 되는지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서울 K운수에서 9년째 중형택시를 몰고 있는 김현수(37)씨가 취재에 협조해 주었다. 합승 부당요금 등 불법행위가 가장 기승을 부리는 심야를 낀 야근조를 택했다.

김씨는 이날 법정근로시간인 8시간 동안 택시를 몰면서 합승 승차거부 등을 일절 하지 않았다. 신도시 등 서울 외곽으로 가는 승객을 태웠을 때도 왕복요금을 받지 않고 미터기에 찍힌 요금만을 받았다. 또 시내에서는 법정제한속도인 시속 60㎞를 지키고 급차선변경 등 승객을 불안하게 할 「난폭운전」도 삼갔다.

김씨가 택시를 몰고 방학동 차고지를 나선 것은 11일 하오 6시께. 추석을 앞둔 탓인지 밤늦게까지 시내는 물론 외곽도로의 체증이 심했다. 대신 택시를 잡으려는 승객도 끊이지 않았다. 6시20분께 우이동에서 첫 손님을 태웠고 가락동에서 마지막 손님을 내려 준 이튿날 새벽 2시20분께까지 모두 22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었다. 이중 밤 12시부터 적용되는 심야 할증요금을 낸 승객이 8명이었다. 쌍문동에서 의정부 금호동(요금 6,400원), 가락동∼분당 신도시(요금 5,880원)까지 두 번 시외로 나갔다.

미터기에 찍힌 총 주행거리(220㎞) 가운데 영업거리는 150㎞. 벌어들인 돈은 8만5,520원이었다. 밤 11시께 택시에 오른 한 40대 취객이 갑자기 택시문을 열고 달아나는 바람에 미터기에 찍힌 돈은 실제보다 4,000원 많은 8만9,520원이었다.

김씨는 주머니돈을 보태 9만원을 회사에 입금했다. 그는 여기서 사납금 6만2,000원을 뺀 2만8,000원의 60%를 업적금으로 받게 된다. 기본급 72만원에 1만6,800원의 업적금을 더한 셈이다.

그가 행선지를 골라 승객을 태우고 합승과 과속 등 불법운행을 했다면 얼마나 더 벌 수 있었을까. 택시를 타려는 사람수나 교통상황으로 보아 합승을 하지 않고도 11만원은 입금했을 것이고 합승까지 했다면 1만∼2만원은 더 벌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어림셈이었다. 업적금으로 1만2,000원을 더 받을 수 있고 따로 주머니에 「합승 부수입」 1만∼2만원을 챙길 수 있다는 계산이니 월 26일 만근을 기준으로 한달에 57만∼83만원을 더 가져갈 수 있다. 준법·불법운행의 차이가 기본급과 비슷한 수준인 셈이다. 그 차이가 생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정도이니 아무리 준법운행을 강조해야 먹혀 들어 갈 리가 없다.

『모든 택시가 준법운행을 해도 택시기사들이 생계에 지장을 받지 않도록 하루 빨리 급여체계가 개선돼야지요. 워낙 승객을 골라 태우거나 부당요금을 요구하는 택시가 많다 보니 「왜 합승을 안 하냐」 「그냥 미터요금만 줘도 되는냐」며 의아해 하는 손님들이 많았습니다』<김경화 기자>

◎택시요금 얼마가 적당할까/시간요금 제외 6㎞기준 서울 2,600원·뉴욕 5,400원·도쿄는 1만3,000원/“서비스 수준 비해선 지금도 비싸다” 여론도

택시 사업자나 정책 당국자는 흔히 턱없이 낮은 요금이 택시 문제의 한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시민들은 오히려 서비스 수준에 비해 현행 요금도 비싸다고 불만을 털어 놓는다.

현재 서울의 중형택시 요금체계는 기본요금(2㎞) 1,000원에 247m마다 100원의 주행요금이 더해지도록 돼 있다. 또 시속 15㎞ 이하의 속도에서는 60초당 100원의 시간요금이 가산된다.

한국산업경제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서울시 택시운임 수준 및 체계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미국 뉴욕의 「옐로 캡」은 기본요금(약 0.8㎞) 1달러 50센트(약 1,400원), 주행요금(322m) 25센트(약 220원). 일본 도쿄(동경)에는 지난해 단거리 운행시 가격이 훨씬 싼 신형택시가 등장했으나 기존택시는 기본요금(2㎞) 650엔(약 4,900원)에 주행요금(280m) 80엔(약 600원)이다. 6㎞를 택시를 타고 갈 경우를 시간요금을 제외하고 계산하면 서울은 2,600원, 뉴욕은 약 5,400원, 도쿄는 약 1만3,000원이다.

택시업자들은 굳이 이런 비교가 아니더라도 요금인상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차량 감가상각비, 연료비, 인건비 등 원가만 따져도 현재의 요금수준으로는 「밑지는」 장사라고 역설한다. 부가가치세 감면 혜택이 있지만 이윤을 챙기기 힘들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서울택시운송사업조합은 「기본요금 1,300원, 주행요금(191m) 100원」, 즉 30.09% 요금인상을 서울시에 요구했다가 거절당했다. 20일 서울시에 제출한 올 요금인상안은 기본요금과 주행요금, 시간요금을 합쳐 총 68%를 인상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시민들의 반응은 전혀 딴판이다. 경기 일산 신도시에 사는 오모(34·회사원)씨는 『대중교통수단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택시요금이 다시 오른다면 서민들은 무리를 해서라도 승용차를 살 수 밖에 없다』며 『신도시 등 서울 근교 주민들은 미터요금만 주고 택시를 타는 일이 없어 현행 요금도 커다란 부담』이라고 말했다.

95년 택시요금이 올랐을 때도 「녹색교통운동」 등 시민단체에서는 요금인상에 대한 감사를 서울시에 청구하는 등 크게 반발했다. 업계가 낮은 요금 때문에 경영난을 겪고 있다고 하지만 형편없는 서비스와 불친절에 시달리는 시민들이 싸다고 느낄 리 없다. 80년대말 중형택시가 소형택시를 대체할 당시 『요금이 오른만큼 서비스가 개선될 것』이라던 기대가 물거품이 된 예도 있었다. 요금 인상과 동시에 사납금이 올라갔기 때문에 불친절과 위법운행은 계속됐다.

전문가들은 『점진적으로 15∼20%의 임금을 올려야 할 필요성이 있다』면서도 『요금인상은 업체의 수지 개선에 도움을 주겠지만 요금인상만으로 서비스 개선을 기대할 수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김경화 기자>

◎전문가 제언/합리적 경영 도입 정부의 장기대책/일정요금 인상에 대한 시민의 인내 등이 병행되어야

일본의 「MK택시」나 영국의 「블랙캡」같은 택시상을 정립할 길은 없는가. 승용차의 급증과 지하철 노선 확충, 교통체증 심화로 택시의 수송분담률이 급감하고 있는 가운데 완전월급제 논란을 계기로 「택시개혁」을 요구하는 소리가 커지고 있다.

업계는 「요금 현실화」가 택시개혁의 관건이라고 주장한다. 요금현실화로 경영상태가 호전되면 운전기사들의 처우 개선이 이뤄져 고질적인 택시문제가 해소될 것이라는 단순한 논리다. 더 나아가 장기적으로는 요금을 대폭 인상해 택시를 「대중교통수단」에서 「고급교통수단」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래야 승객을 문앞에서 문앞까지 태워 나르는 택시 본래의 기능이 회복될 수 있다는 것. 택시를 고급화하면 수요·공급의 불균형 해소로 서비스 개선이 가능해지고 수송분담률이 더욱 낮아져 택시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할 것이라는 얘기다.

정부가 장기적으로 모든 택시를 모범택시화하겠다는 방침도 이런 주장과 궤를 같이 한다. 정부는 수년전부터 택시사업 신규면허를 억제하고 있으며 올해말까지 법인택시 2,000대를 모범택시로 전환할 방침이다. 또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망을 확충해 2001년까지 택시 수송분담률을 5%선까지 끌어 내린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택시 고급화 방침에 대한 우려도 무성하다. 녹색교통운동 임삼진 사무총장은 『요금인상은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요금문제보다는 사업면허가 이권으로 변질한데다 업계가 전근대적인 경영방식을 벗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진단했다.

『사업자 면허의 양도·양수 과정에서 건네지는 프리미엄이 심한 이자 압박과 투자자본 조기 회수 압력을 사업자에게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경영이 어렵고 사납금제 임금체계를 유지하면서 운전기사를 압박하게 되지요. 이런 상황에서 요금만 오른다고 서비스가 개선될 수 있겠습니까』

그는 사업주가 회사문을 닫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 면허를 넘기는 대신 국가에 반납하는 가칭 「택시면허공영제」를 대안으로 들었다. 또 각종 규제를 완화, 현재 서울의 경우 7만대선에 묶여 있는 택시시장을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택시사업을 시장원리에 맡겨 일부 영세·한계기업을 정리해 서비스 경쟁 및 경영 합리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것.

그는 정부와 업계, 택시기사, 시민 모두가 거시적으로 택시문제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소비자의 기대에 따르지 못하면 살아 남을 수 없다는 업계의 절박한 자기 인식, 교통환경의 변화를 고려한 정부의 장기적인 대책, 일정한 요금인상에 대한 시민의 인내 등이 병행하지 않는 한 택시개혁은 아득합니다』<황동일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