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 둘이 탄생했다. 올해로 30회가 되는 한국일보문학상을 성석제(37)씨와 윤영수(45)씨가 처음으로 공동수상한 것은 이미 90년대가 종반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 문학에서 「소설」이란 말이 본래 갖는 의미인 「이야기」가 되살아나고 있음에 대한 찬사로 받아들여진다.소설이 시대의 고민을 떠안고 괴로워하던 80년대, 그리고 그 고민이 어느 정도 사라지는 듯하자 『이제 무엇을 쓸까』하고 버거워하던 90년대 우리 문학의 모습이 이 두 사람에 이르러서는 경쾌하게 타파된다. 두 사람의 작업이 각각 「한 거짓말장이의 탄생」(문학평론가 이광호)이자 「90년대가 반겨준 마지막 이야기꾼」(문학평론가 백지연)이라는 평처럼 최근 문단에서 유달리 주목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동수상작 「유랑」(성석제)과 「착한 사람 문성현」(윤영수)은 그 내용이나 메시지, 작가의 어투와 문체에 있어서는 판이한 작품이다. 성씨가 재기발랄한 재담가처럼 독자들을 울고 웃게 만든다면, 윤씨는 냉혹하다 할 정도의 리얼리즘적 기법으로 독자들을 자신의 소설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들의 수상작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형식이다. 「유랑」은 8·15 때 부모와 헤어져 한국에 홀로 남은 「하세가와 도미코」라는 한 일본인여자의 인생역정을 그린다. 「착한 사람 문성현」은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태어나 39년의 짧은 생애를 살다 간 문성현의 성장과정과 죽음의 기록이다. 두 작품 다 전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이야기의 형식이다. 두 사람은 이번 수상을 계기로 처음 대면한 자리에서도 금방 『우리 소설이 진짜 상상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한편 한국일보문학상은 올해부터 상금을 종전 5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파격적으로 인상했다. 상금인상은 한국문학의 발전과 세계화를 염원하는 대한재보험의 후원으로 이뤄졌다.<하종오 기자>하종오>
◎유랑/성석제/웃기고 울리는 타고난 입심/해학으로 현실 기성권위 비판
하세가와 도미코의 인생역정을 화자인 「나」가 서술하는 액자소설형식을 취한 「유랑」의 마지막 문장에서 성석제씨는 이렇게 말한다. 『제기랄, 모든 게 너무 빠르다』 그는 옛 이야기를 하면서 기실 현재를 비판한다.
그의 장기는 작품마다 배어나는 입심에 있다. 어깨힘을 빼고 우리의 전통적 「해학」과 「골계」를 되살리고 있다고 평가되는 그의 소설들은 우선 재미있다. 최근의 작품집 「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와 「새가 되었네」는 물론, 짤막한 이야기를 모은 「재미나는 인생」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를 읽고 무릎을 치고 웃거나 실소를 터뜨리지 않은 이 드물 것이다.
하지만 그 웃음은 소설이 가벼워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성씨는 『내가 그렇게 생겨먹어서 소설도 그렇게 써진다』고 말하지만 그는 그렇게 「농담」 같이 읽히는 어투 그 자체에 기성의 모든 권위에 대한 조소를 담으려 하는 것같다. 「새로운 시속만 찾는 세태에서 그토록 변하지 않으면서도 그 술집이 십여 년이나 버틸 수 있었던 건 아무래도 벙어리 여인의 매운 손끝과 정성스러운 손맛 덕분이 아닌가 싶다」는 「유랑」의 한구절처럼 그는 젊은 작가이면서도 작품마다에서 「시속만 찾는 세태」를 유쾌하게 비판한다.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성씨는 86년 시인으로 등단했다. 작품에서 번득이는 촌철의 기지는 동서양 고전에 대한 그의 관심과 아울러 이 시인적 기질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그는 요즘 이천에 마련한 자그마한 작업공간을 손수 다듬느라 정신이 없다. 「유랑」의 주인공 「상공」처럼 탁주에 절어 작취미성인 채로 말이다.
◎착한 사람 문성현/윤영수/창작교실 수강하다 늦깎이 입문/냉혹한 리얼리즘기법 돋보여
윤영수씨는 『성석제씨가 받을 상금을 가로챈 것 같아 미안하다』며 웃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착한 사람 문성현」은 「감동적」이라는 말에 값하는 근래 드문 작품이다. 뇌성마비아로 태어난 문성현. 「성현은 계속하여 울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울 수가 없었다… 아무도 자신처럼 벋정대며 울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는 그 순간에 깨달았다. 자신은 다른 이와 너무나 달랐다」.
문성현의 탄생과 죽음, 가족의 사랑을 통해 「착한 사람」의 상을 탄생시킨 작가의 문체는 집요하달 정도로 사실적이다. 문성현의 모습은 「인간이라는 존재도 하느님께는 그러할까? 졸렬하고 야비하고 어리석은 인간들.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 자신은 남보다 낫다고, 자신만은 존재가치가 있다고 착각하고 사는 인간이라는 종자들」에 대한 섬뜩한 비판이기도 하다.
만나보면 윤씨는 우리 주변의 여느 평범한 중년의 아주머니 같은 작가다. 서울대 역사교육과를 나와 종가집 큰며느리로 3남매를 키우며 살아오다 90년 「현대소설」에 단편 「생태관찰」로 등단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우연히 친구 따라 문예창작교실 수강신청을 했다가 소설을 쓰게 됐다』는 윤씨는 그러나 첫 작품집 「사랑하라, 희망없이」에 이어 「착한 사람 문성현」을 표제작으로 내놓은 두번째 작품집으로 90년대 우리 문학에 「절박한 희망」을 주는 작가로 등장했다. 『억지로 물에 빠져 가라앉지 않으려고 머리만 동동 내놓고 떠 있는 형국』으로 자신을 거듭 겸양하는 윤씨는 그 모습만큼이나 착실한 걸음걸이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그는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금도끼 은도끼」 등 우리 전래 설화를 한편씩 소설화하고 있는 중이다.<하종오 기자>하종오>
◎심사평/거침없는 이야기… 뛰어난 형상화…/난상토론끝 공동수상 결정
1997년 9월18일 회동한 본심위원들은 우선, 한국일보문학상이 문학성을 중시해온 전통을 확인하면서, 아울러 신예작가들의 실험적 작업에 대해서도 열려있었다는 점에 유의하였다. 따라서 1996년 7월부터 1997년 6월 사이, 국내 각 문예지에 발표된 소설 가운데, 문단 경력과 관계 없이, 가장 우수한 작품에 상이 주어진다는 원칙에 합의하였다.
13편의 작품은 무거운 후일담소설로부터 극단적 내면소설까지, 정통 사실주의로부터 현실과 공상의 경계를 부단히 넘나드는 우화적 기법까지,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 도열하고 있었다. 심사는 각 경향의 작품 가운데 대표적인 것들을 추려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짧지 않은 난상토론 끝에 심사위원회는 윤영수의 「착한 사람 문성현」과 성석제의 「유랑」에 주목, 이들을 집중적으로 검토하였다. 육신의 불구라는 천형의 조건 속에서 고통스러운 내면의 투쟁을 거쳐 세상과 인간에 대한 아름다운 대긍정에 이른 뇌성마비자의 짧은 인생을 뛰어나게 형상화하는데 성공한 전자와, 소설의 허구성에 전적으로 자신을 내맡김으로써 아무 거리낌 없이 전통적 소설서사문법을 파괴하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재질을 잘 보여주는 후자, 모두 요즘 소설로는 매우 드문 성취라는 점에 동의하였다.
그런데 전자에 대해서는 주제의식이나 서사기법이 너무 구식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제기되었고, 후자에 대해서는 소설의 리얼리티로부터 너무 자유로와서 경박의 위험도 지적되었다. 좀체 이견은 해소되지 않았다. 두 작품 모두 오늘날 한국소설이 당면한 두 얼굴이라는 점에서 한국일보문학상 제정 이후 초유로 두 작품을 공동수상작으로 삼았다. 모쪼록 심사위원회의 고심을 진지하게 음미하여 앞으로 우리 소설의 진정한 미래를 개척해주기를 기대하며, 두 작가의 수상을 축하한다.<심사위원=김윤식 김화영 이문렬 최원식>심사위원=김윤식>
◎심사경위/96년 7월∼97년 6월 발표 400여편중 예심추천작 13편 압축
제30회 한국일보문학상은 96년 7월부터 97년 6월까지 국내 각 계간·월간·격월간·반년간 문예지와 문화무크지에 발표된 기성작가들의 단편, 중편 및 장편소설 406편을 대상으로 했다. 심사위원들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고 단행본 등으로 별도 발표된 작품의 경우 이들도 대상으로 삼았다. 예심위원으로 위촉된 문학평론가 박혜경(명지대 교수) 서영채(한신대 교수) 우찬제(건양대 교수)씨는 8월28일 모임을 갖고 대상작품 중 각각 10편 내외의 작품을 추천했다. 이들 중 중복 추천된 작품을 우선 통과시키고 나머지 작품중 토론을 거쳐 모두 13편을 예심 추천작으로 선정했다. 예심 추천작은 고종석의 「서유기」, 김소진의 「신풍근 배커리 약사」, 김승희의 「회색고래 바다여행」, 김영하의 「도마뱀」, 김형경의 「민둥산에서의 하룻밤」, 성석제의 「유랑」, 윤영수의 「착한 사람 문성현」, 윤효의 「단편들」, 이혜경의 「떠나가는 배」, 정찬의 「깊은 강」, 최시한의 「섬에서 지낸 여름」, 최인석의 「약속의 숲」, 하성란의 「루빈의 술잔」(이상 가나다 순)이었다.
본심위원 4명은 지난 18일 한국일보사에서 회동, 13편의 작품을 비교 검토하면서 최종 수상후보작을 성석제의 「유랑」과 윤영수의 「착한 사람 문성현」 두 작품으로 압축했다. 계속된 난상토론에도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고 평가한 심사위원들은 두 작품 모두 한국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임에 공감하고 만장일치로 공동수상을 결정하였다.<하종오 기자>하종오>
◎역대수상자·연혁
한국일보문학상은 30회가 되는 올해 대한재보험의 후원으로 상금을 2,000만원으로 대폭 인상, 명실공히 국내 최고 권위의 문학상으로 거듭나게 됐다.
한국일보문학상은 68년 신문학 60주년을 기념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100만원의 상금을 내걸고 「한국창작문학상」으로 출범했다. 20회부터 상의 명칭을 「한국일보문학상」으로 바꾸고 상금도 500만원으로 인상했다. 한국일보문학상은 30년간 해마다 최고의 문학성을 성취한 작품을 엄정한 심사과정을 거쳐 시상, 여타 문학상의 상업성시비 등에 경종을 울리며 상의 권위와 한국문학의 역량을 함께 지켜왔다. 이는 수상자와 수상작품의 면면이 말해주고 있다.
▲1회=한말숙 「신과의 약속」 ▲2회=방영웅 「달」 ▲3회=오유권 「일가의 몰락」 ▲4회=강용준 「광인일기」 ▲5회=이문구 「장한몽」 ▲6회=신상웅 「심야의 정담」 ▲7회=정을병 「병든 지구」 ▲8회=이청준 「이어도」 ▲9회=유현종 「들불」 ▲10회=이병주 「망명의 늪」 ▲11회=김문수 「육아」 ▲12회=김원일 「도요새의 명상」 ▲13회=이동하 「굶주린 혼」 ▲14회=최일남 「홰치는 소리」 「세고향」 ▲15회=윤흥길 「꿈꾸는 자의 나성」 ▲16회=김원우 「불면수심」 ▲17회=임철우 「아버지의 땅」 ▲18회=윤후명 「섬」 ▲19회=서정인 「달궁」 ▲20회=이제하 「광화사」 ▲21회=박태순 「밤길의 사람들」 ▲22회=이인성 「한없이 낮은 숨결」 ▲23회=김영현 「저 깊푸른 강」 ▲24회=하창수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 ▲25회=이창동 「녹천에는 똥이 많다」 ▲26회=신경숙 「풍금이 있던 자리」 ▲27회=구효서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 ▲28회 김인숙=「먼 길」 ▲29회=전경린 「염소를 모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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