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비속함엔 시의 길이 없다”/김달진 문학제 심포지엄 주제발표/“속된 욕망에 대한 맹목적 충실… 삶의 의미에 대한 진지성 결여”『90년대 젊은 시인들은 비속하고 저속한 세속적 삶 속에서 그 삶을 저속하고 비속한 언어로 노래한다… 시가 싸구려 대중문화보다 나아야 한다는 생각 또는 삶의 긍정적 가치를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은 찾아볼 수 없다』
90년대 한국 시의 세속성은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을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일상어는 물론 비어와 욕설까지도 시어로 사용되면서 시는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온 일면이 있다. 그러나 90년대 시가 과연 그 세속성과 「시적 정신」을 양립시키고 있는가는 의문이기도 하다. 이남호(41) 고려대교수는 『아니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27일 경남 진해에서 열리는 제2회 「김달진문학제」 심포지엄 주제발표문인 「현대시와 세속성」을 통해 대표적 90년대 시인들을 맹렬히 비판하고 나섰다.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젊은 시인들에 대한, 무게 있는 비평가의 전면비판이라는 점에서 이 발표문은 큰 관심을 모은다.
「아, 시바알 샐러리맨만 쉬고 싶은 게 아니라구// 내 고통의 무쏘도 쉬어야겠다구 여자로서 당당히 홀로 서기엔 참 더러운 땅이라구//… 같이 살 놈 아니면 연애는 소모전이라구 남자는 유곽에 가서 몸이라도 풀 수 있지/ 우리는 그림자처럼 달라붙는 정욕을 터뜨릴 방법이 없지…/ 좌우지간 여자직장 사표내자구 시발」
이 교수는 신현림씨의 「너희는 시발을 아느냐」라는 시를 우선 도마에 올린다. 그는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여성이 차별받는 사회에 대한 불만』이지만 『그 불만의 태도나 어조 그리고 이유 모두가 상스럽다. 그것은 위악도 아니고 과장도 아니다… 이러한 자기방기적이고 상스러운 독백이 시적이 아니라는 생각은 여기서 개입할 여지가 없다』고 비판한다.
비디오테이프가 투입구에 반쯤 걸려 있는 것을 보고 「길들여진 사랑과/ 매혹하는 관능/사이,/일상과 도피는 「꼬옥」 맞물려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반쯤 걸려 있는 것은 외설스럽다/ 누가 보면 욕한다/ 삶이여.//갑자기 진지해진다」고 한 박청호씨의 「지옥에서 보낸 한 철3」이란 시에 대해서는 『화자는 결과적으로 진지하게 삶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처럼 중요한 생각의 빌미가 되는 것은 남근이 질에 반쯤 들어가 있는 이미지』라며 『이러한 비속한 상상력으로 삶의 의미에 진지하게 다가갈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이어 채호기씨의 「너의 입술」이라는 시에 대해서는 『시인은 입술과 여자 성기를 비교하여 …외설적 재담(별다른 통찰이 없으므로 시시한 재담) 그 자체가 시가 되고 있다』면서 시인의 상상력이 단순하고 속되다고 비판했다. 「오픈카를 타고/ 토요일 밤의 홍대 앞/ 피카소 거리에 나가고 싶어/와우,/ 똥꼬치마 입은 계집애들/ 레게바에 데리고 가/ 보드카나 데낄라로 몸을 덥히면/ 이미 반은 침대에 쓰러뜨린 거나 같지」라고 우리 사회의 한 풍경을 그린 하재봉씨의 시 「오픈카를 타고」의 경우 『화자의 태도는 속된 욕망에 맹목적으로 충실할뿐 반성적인 자기 인식은 전혀 개입되어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90년대 시인들에 앞서 이성복 최승자 황지우 박남철씨 등 80년대 시인들이 과감하게 욕설과 화장실 낙서까지 시에 수용해 사용했지만 『그것은 비속한 표현들로 기성의 모순과 거짓을 해체하려는 시적 전략이었지 비속함 자체를 드러내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고 비교했다. 이에 반해 『90년대 시인의 삶과 언어는 비속한 삶 속에 묻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시를 소중하게 여기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세상의 거짓과 황페에 맞서는 맑은 정신을 지녔기 때문이며 특별히 몇몇 예외적 상황을 제외한다면 맑은 정신은 비속성과 결합될 수 없다』며 『지나친 비속함에는 시의 길이 없다』고 결론지었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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