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지은 딸 검거도운 유괴범 전씨의 아버지 모습에서 ‘진정한 어른’을 본다한 수사경찰관은 다음과 같은 푸념을 했다. 『법을 어긴 젊은이들을 다루다보면 권력이나 돈이나 명예를 가지고 있어서 사회적으로 좀 알려진 부모들이 나타나 자식을 타이를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들의 힘을 이용해 경찰관을 압박하려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좌절감을 느낄 뿐아니라 직업을 버리고 싶은 심정이 되곤 한다』는 것이었다.
박초롱초롱빛나리양 유괴살해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임신 8개월의 여인이 어린이를 유괴해서 살해하였고 수사는 지지부진하여 미궁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하였다. 이런 가운데 범인의 아버지가 자신의 딸이 범인일 수도 있다는 심증을 갖게 되었고 이때부터 그 아버지가 적극적으로 수사에 협조해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우발성 범죄를 제외한 대부분의 범죄자에게서는 도덕적 결함을 발견할 수 있다. 도덕성은 사춘기 이전에 그 윤곽이 드러나고, 따라서 도덕성의 성취에는 사춘기 이전의 가정교육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한 인간에게 도덕적 결함이 있다면 그 책임의 대부분은 그를 키운 부모에게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꿈많은 문학소녀를 자처하던 한 젊은 여인이 어떤 경로로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도덕적 결함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고, 따라서 딸을 그렇게 키운데 대하여 그 아버지를 질책할 근거는 충분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는 그 아버지에게 왜 딸을 그렇게 밖에 키우지 못했느냐고 비난할 생각이 조금도 나지 않는다. 오히려 동정과 존경이 앞선다.
좀 안된 말이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 누가 어른이냐고 물을 때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나라의 어른이 되겠다는 대통령 후보들의 텔레비전 출연장면에서는 어른다운 구석을 찾기가 힘들다. 그들을 대통령이 되게 하려고 열심히 상대방을 공격하고 자신의 윗사람을 선전하는 여러 정치인들의 공방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어른이 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이러면 어른대접을 못받는다고 반면교사 노릇을 하는 것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약속을 쉽게 깨고 어제와 오늘의 말이 다른 것이 나라의 어른이라는 정치인들의 언행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나라의 지도층이란 사람들이 자신의 자식이 연루된 일이라면 우선 적당히 처리하려 한다고 서민들은 불평한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현상은 그들을 나라의 어른으로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심정의 표현이다. 본인이나 아버지가 절대로 비리를 저지르지 않았고 법률적으로도 한치의 하자도 없다고 주장하는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 아들의 징병검사문제도 아직까지 법률적으로 뚜렷한 결론이 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결국 지도자를 믿지 못하겠다는 국민들의 의식의 발로가 사건 확대의 핵심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시점에서 박나리양 사건에서 범인이라고 체포된 전여인의 아버지는 우리에게도 진정한 어른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오랜만에 나타난 어른다운 어른이었다.
그에게는 많은 고뇌가 있었을 것이다. 아니 지금 『나만 모른척 했으면 내 딸이 체포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하고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느 아버지라고 딸을 경찰의 손에 넘겨주고 싶겠는가. 그래서 우리의 법은 웬만한 범죄에서는 아버지가 자식을 숨겨주어도 범인은닉죄를 적용하지 않는 경향이다. 그럼에도 전여인의 아버지는 자신의 모든 고통을 감수하면서 딸의 검거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
그 끔찍한 사건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도 어른이 있고 따라서 희망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진정한 어른이기에 공사를 분명히 해야 했고, 그러기에 남몰래 딸의 범죄와, 체포와, 재판과, 태어날 외손의 양육 등 앞으로 일어날 많은 일들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있을 그에게 마음으로부터 위로를 보낸다. 부디 이번 일로 낙심하지 않고 계속 어른으로 남아 있어주기를 간절히 부탁한다. 우리 사회에 너무 어른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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