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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되는 아이들/심경석 아동문학가(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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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되는 아이들/심경석 아동문학가(아침을 열며)

입력
1997.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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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부화되어 자라는 양계장의 수많은 병아리들은 어미닭을 모르고 자란다. 어미닭을 따라서 마당이나 풀밭으로 나들이 해본 일이 없다. 어미닭의 날갯죽지 사이로 숨바꼭질을 한 일도 없다. 그저 일정한 공간에서 사료로 사육되고 있다.기러기는 알에서 태어나면서 처음 보는 것을 어미로 머릿속에 기억한다고 한다. 연구자는 이를 가리켜 「임프린팅(Imprinting)」이란 용어를 쓰고 있다. 영화 「아름다운 비행」에서는 기러기 새끼들이 자기들을 부화시킨 소년을 어미로 생각하고 따라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모든 새들이 이런 것은 아니겠지만 병아리들은 무엇을 어미로 기억하고 있을까? 양계장의 병아리들을 보면서 오늘의 아이들을 생각한다. 오늘의 아이들은 교육되고 있는가, 아니면 사육되고 있는가?

태어나면서 아이들은 우유 속에서 산다. 그래서 엄마의 가슴을 잃었다. 볼에 닿는 부드럽고 따뜻한 엄마의 가슴과 엄마의 냄새를 잃었다. 부드러운 엄마의 젖꼭지 대신 이상한 촉감을 가진 우유병 꼭지를 물고 자란다. 엄마의 얼굴만 바라볼 뿐 제한된 스킨십 속에서 자란다.

아이는 자라면서 엄마의 가슴이나 등대신 보행기에 앉혀진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가. 체험하지 않은 남자들은 그것을 추상적으로 이해한다. 그러니 육아의 편의주의도 이해할만 하다.

한국전쟁 직후 한국을 찾은 미국 교육시찰단의 말이 생각난다. 전국토가 전란에 시달렸는데 어찌 한국 사람들은 정신병자가 많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이런 전쟁이 났다면 정신병자가 상당히 많이 생겼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이를 업고 가는 젊은 부인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한국 아이들은 어머니의 따뜻한 품에서 자라고 어머니의 안전한 등에서 나들이 하고, 어머니의 곁에서 안심하고 자기 때문에 정신이 건강하다고 하였다. 바로 스킨십의 육아가 정신의 건강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런 칭찬을 받은 육아도 점점 편의주의에 빠져들고 있다. 돌이 지나면 기저귀를 찬채 놀이방에 맡겨진다. 어머니들은 잠시나마 자유시간을 얻게 된다. 돈이란 것은 편리하다. 기저귀를 벗어 던지면서 학원의 노예가 된다. 유아때 학원에 안가는 아이가 없다. 어머니가 가르칠 수 있는데도 학원에 보낸다. 조기교육이란 욕심과 아이로부터 해방되려는 편의주의가 복합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학원 네 곳을 다닌다. 학교에서 돌아와 점심을 먹으면 바로 학원생활이 시작된다. 세 곳을 마치고 중국집에 가서 저녁식사로 자장면을 사먹고 마지막 학원을 마친후 저녁 7시반에 집에 돌아온단다. 어머니는 남편의 퇴근 시간과 아이가 들어오는 시간이 비슷해서 좋아한다. 그 사이 어머니는 수영장으로, 노래교실로 다니며 자유시간을 즐긴다고 한다. 살만해지면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는 버릇이 생긴다. 이것이 편의주의에 빠진 대표적인 자녀교육이다.

지금 우리는 돈이란 사료로 아이를 사육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기러기는 태어나면서 어미를 임프린팅하지만 사람은 성장기를 거치면서 오랜 기간에 걸쳐 아버지와 어머니를 임프린팅한다. 기러기는 머릿속에 어미를 새기지만 사람은 가슴 속에 새긴다.

내 아이에게 나는 무엇인가? 내 아이의 가슴 속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있는가? 우리는 병아리나 기러기를 기르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기르고 있다. 사람은 돈이란 사료로는 길러지지 않는다. 돈은 무서운 독소를 가지고 있다. 먼훗날 내 아이가 이 독소로 죽어가서는 안된다. 아이는 부모가 보여주는 「사람다운 것」을 보면서 사람이 되어 간다. 아이를 멀리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부모와 지내는 시간을 많이 갖도록 해야 한다. 많이 대화하고 스킨십으로 감싸야 한다. 그런 「사람다운 것」이 아이의 가슴 속에 잘 들어간다.

『아이를 동물 같이 사육한다』는 불명예를 떨쳐 버려야 한다.<서울신암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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