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부모 양계혈통주의 도입을 골자로 국적법을 개정키로 한 것은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빗장을 닫아걸고 살아 오지 않았나 하는 성찰의 계기가 됐다. 지구촌 시대라는 말이 생긴지 오래인데 유독 우리만 부계혈통주의를 고집함으로써 외국인 남성과 결혼한 우리 여성들의 가정에 엄청난 고통을 강요해 온 것이다.어머니만이 한국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국적 부여를 거부하는 현행 제도는 전근대적 법제이기에 앞서 명백한 인권침해이다. 서울고법은 지난달 외국인 근로자와 결혼한 한 여성이 제기한 자녀 국적확인소송 판결에서 부계혈통주의 규정이 남녀평등을 천명한 헌법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고 인정, 헌재에 위헌심판을 제청한바 있다.
이 규정은 또 국제협약 및 규약 위반이라는 비난의 근거가 됐다. 우리나라는 84년 「자녀의 국적과 관련해 여성에게도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는 규정을 둔 유엔 여성차별철폐 협약, 90년에는 남녀평등권을 규정한 국제 인권규약에 가입했으면서도 그 의무 이행을 유보해 왔다.
국제결혼의 증가는 피할 수 없는 조류이다. 지금 우리나라에 체류중인 22만여명의 외국인 근로자들과 우리 여성간의 결혼도 해마다 늘고 있다. 여기에 유학생 상사원 주한미군 등과 우리 여성의 결혼, 재일동포 여성의 일본인과의 결혼 등을 합치면 연간 7,000∼1만쌍이나 된다고 한다.
이들 사이에 태어난 2세도 줄잡아 14만, 많게는 2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이들은 국내에서는 예외없이 무국적자 취급을 받고 있다. 학령이 되어도 학교에 갈 수 없으며, 의료보험 같은 기본적인 사회보장 혜택에서마저 제외당하고 있다. 그래서 아버지 나라로 보내져 어머니 없이 양육되거나, 사회적인 냉대를 감수해 가며 자라고 있다. 남편은 3개월만에 한번씩 출국했다가 재입국 허가를 받아 들어오는 불편을 겪고 있으며, 불법체류 전력이 있으면 한번 출국후 재입국 허가가 나지 않아 생이별 이산가족이 된다.
부모 양계혈통의 인정은 국제적 추세이다.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들은 70년대부터 이를 채택했다. 가장 보수적인 일본조차 84년 부계혈통주의 전통을 포기했으며, 중국과 북한은 국적법 제정 당시부터 양계혈통주의를 취했다. 모든 나라와 민족은 자기들의 전통과 고유문화와 혈통적 순수성을 길이 보전하기 원한다.
배달민족의 순수성을 자랑해 온 우리에게 외국인 피가 섞인 사람을 우리 국민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특유의 민족정서가 있음은 당연하다. 그래서 유림을 필두로 한 보수세력의 반발이 국적법 개정을 방해해 온 것이지만 국제화 시대의 거센 조류는 더 이상 그런 민족주의를 용납하지 않는다. 자녀를 호적에 올릴 때 어머니 성과 본을 따를 수 없도록 된 호적법 민법 같은 관련법의 정비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또한 법개정과정에서 새로운 법취지에 대한 악용소지를 최소화하는 적절한 기술상의 배려도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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