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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음악의 박람회 26일 ‘팡파르’/세계음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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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음악의 박람회 26일 ‘팡파르’/세계음악제

입력
1997.09.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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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 주제로 내달 3일까지/컴퓨터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 등 세계각국의 창작곡 85편이 서울 무대에서 축제 한마당담쟁이 덩굴처럼 벽에 다닥다닥 음향을 「설치」한다. 스피커를 매단 자전거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공간의 음악을 연주한다. 고함치는 목소리가 공기와 협연한다. 컴퓨터 신호가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새롭고 낯선 음악들이다.

26일 개막, 10월3일까지 계속되는 97세계음악제(World Music Days)는 최근 5년간 전세계에서 작곡된 다양한 현대음악 85곡을 소개한다. 현장은 예술의전당, 국립극장을 비롯한 서울 시내 주요 공연장과 경기 남양주시 두물워크숍. 총 23개의 공연을 통해 현대음악의 최신 조류가 봇물 터지듯 쏟아진다.

「현대음악박람회」로 불리는 이 행사는 20세기 음악의 진보적 경향을 대표해온 작곡가단체 「국제현대음악협회(ISCM)」가 1923년부터 매년 개최, 현대음악의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 역할을 해왔다. 바르토크의 「피아노협주곡 1·2번」, 스트라빈스키의 「목관8중주」, 메시앙의 「세상의 종말을 위한 4중주」 등 많은 걸작이 여기서 역사적 초연이 이뤄졌다.

한국은 홍콩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개최지가 됐다. 올해의 주제는 「인성」. 모든 음악회에 사람의 목소리가 빠지지 않고 이를 주제로 한 심포지엄도 마련된다.

세계음악제의 핵심은 창작곡 연주에 있다. ISCM은 매년 전세계에서 작품을 공모, 우수작을 골라 세계음악제에서 연주한다. 이번에 연주되는 85편에는 한국작품 4편을 포함해 45편의 ISCM 입선작이 들어 있다. 61개국 총 665편의 응모작 중에서 뽑힌 수작이다. 유명작곡가도 낙선하는 예가 드물지 않기 때문에 입선은 큰 영예이다. 여기에 각 회원국이 추천한 24곡, ISCM 한국지부가 선정한 한국작품 16곡이 추가됐다.

음악제가 열리는 동안 서울은 세계 현대음악의 중심이다. 50여개국 500여명의 음악가가 모인다. 외국에서는 북구 최고의 작곡가 페르 노가드를 비롯한 작곡가, 유럽 최고의 현대음악 앙상블로 꼽히는 아스코앙상블(네덜란드) 등 7개 외국 단체, 전자음악을 탄생시킨 바젤 전자음악스튜디오(스위스), 타악기 주자 미르세아 아델레아누, 바리톤 쿠어트 비드머(스위스) 등 100여명의 음악가가 찾아온다. 한국에서는 KBS교향악단, 한국페스티발앙상블, 서울바로크합주단, 한국전자음악협회 등 15개 단체와, 솔리스트로 바이올린의 강동석, 소프라노 넬리 리 등이 참가한다.

21세기를 코 앞에 두고도 20세기음악은 대부분 여전히 낯설다. 「어렵고 괴롭다」는 반응이 일반적이다. 현대음악이라면 무대도 객석도 썰렁하기 짝이 없는 국내 풍토에 비춰볼 때 이번 세계음악제는 무모하리만치 진보적인 축제이다. 하지만 이번 행사의 집행위원장인 작곡가 강석희(서울대 교수)씨는 『현대음악도 재미있고 좋은 게 많다는 것을 깨닫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한 「눈뜸」이 일어난다면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오미환 기자>

◎인터뷰/집행위원장 강석희 교수/“현대음악과 사귈 수 있는 기회/도전하는 자세로 접근해야”

『국제현대음악협회(ISCM)의 세계음악제는 최고 권위와 전통을 자랑하는 현대음악제로, 유럽에서는 대개 국왕이나 대통령이 대회장을 맡습니다. 올림픽처럼 국력과 문화적 역량을 갖춘 나라만 치를 수 있는 명예이기도 하지요. 우리와 끝까지 유치 경쟁을 벌였던 일본은 2001년, 이어 대만이 2003년에 주최, 21세기 현대음악의 무게중심이 유럽에서 아시아로 이동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세계음악제 집행위원장인 작곡가 강석희(서울대 음대 교수)씨는 세계음악제 주최 의의를 이렇게 설명했다. 강 위원장은 66년 한국 최초의 전자음악 「원색의 향연」을 발표했고, 88년 서울올림픽 폐막식 음악감독, 84∼90년 ISCM 부회장을 맡았다. 세계음악제를 통해 지금까지 10여 작품이 소개됐으며 내년 영국 맨체스터 세계음악제에서도 그의 피아노협주곡이 연주된다.

현대음악에 대한 거부감에 대해 강 위원장은 『바흐음악도 바흐가 살던 당시에는 현대음악이었다』며 선입견을 버릴 것을 충고한다. 『바흐음악도 처음 들으면 어렵습니다. 현대음악도 마찬가지죠. 도전하는 자세로 접근하면 즐길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세계음악제는 현대음악과 사귀는 자리입니다』

그는 『행사를 준비하면서 예산을 확보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이번 세계음악제 예산은 10억원. 국고 지원과 문예진흥기금, 각국 정부와 문화단체의 보조를 받았지만 2억원 이상 적자가 예상돼 집행위측은 각계에 후원 요청서를 보냈다.<오미환 기자>

◎한국과 국제현대음악협회/51년 첫 가입… 첫 입상은 고 윤이상/3년간 입선못해 제명당하기도/70년대 이후 두각… 올해도 4명 입선

한국은 51년 국제현대음악협회(ISCM)에 가입했다. 3년 동안 세계음악제 입선작을 못내면 제명당하는 ISCM 규정에 따라 한동안 쫓겨났다가 71년 재가입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72년 박준상의 「목관5중주」를 시작으로 73년 김정길, 76·78년 강석희에 이어 80년대에는 박영희 이만방 진은숙 정남희 조성온 홍수연 장영숙 이신우씨 등이 잇따라 입선, 한국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이러한 추세는 90년대 들어서도 계속돼 91년 취리히 세계음악제에 한국작품 5편이 동시에 입선했고 올해도 조성온(41) 김재욱(28) 최명훈(23) 문성준(28)씨 등 4명이 입선했다. 올해 입선작은 30개국 60편으로 한국보다 많은 나라는 아르헨티나(5편)뿐이고 영국과 프랑스는 한국과 같은 수의 입상자를 냈다.

한국인 최초의 입상자는 고 윤이상(60년 독일 쾰른)이지만 이는 한국지부가 아닌 개인자격이었다. 윤이상은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쇤베르크, 힌데미트 등 대가들과 나란히 ISCM 명예회원이었다. 17일은 그의 80세 생일이었다. ISCM 한국지부는 본래 이날에 맞춰 세계음악제를 열고 그를 초청할 계획이었으나 그의 타계로 무산됐다.<오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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