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생약목욕 “만성병 씻은듯이”/중앙아 칭장고원·쿤룬산맥일대 동충하초 등 약재 300여종 자라/병원마다 약욕실 2∼3개씩/모래찜질·온천욕·쑥뜸도 성행신장(신강)자치구의 수도인 우루무치는 꽤 컸다. 인구도 10만명이 넘었다. 거리를 자동차로 달리다 보면 확실히 동서문화의 교류가 빈번했던 만큼 각기 다른 인종이 모여 산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근래 성행하기 시작한 카자흐스탄 및 우즈베키스탄과의 국경무역으로 붐비고 있는 위구르족 거리를 벗어나면 타타르족을 만나게 되고, 얼마 가지않아 몽골족이나 한족이 모여사는 구역에 들어선다. 생활습관도 크게 차이가 난다.
이 고장에서는 회교도를 한족에 비해 맑고 깨끗하다는 의미에서 칭전(청진)교도라 하며 회교사원을 칭전교당이라 부른다. 이들이 드나드는 음식점은 칭전식당이라고 한다. 칭전교도는 한족이 좋아하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만지지도 않는다.
1. 칭장(청장)고원의 이모저모
좀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청나라 강희제때 북경에 와 있던 프랑스 신부 「파르낭」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영향력이 절정에 이르렀던 청나라에서는 한의학 뿐 아니라 여러 종족의 전통의학이 이용됐다고 한다.
청나라 왕실의 서양의사 「파라미노」가 강희제를 따라 서쪽의 변경지역에 갔을 때 왕이 갑작스럽게 심한 복통을 일으켰다. 이때 한의사는 물론 서양의사들도 그의 병을 고치지 못했다. 결국 이 고장 위구르의사에게 그 병을 고치도록 맡겼다. 위구르 전통의사는 자신이 갖고 있던 기름, 대마, 약초가루를 써서 강희제가 고통스러워 하는 부위를 찜질해 30분도 되지 않아 깨끗하게 고쳤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는 갑신정변때 중상을 입은 당시의 세도가 민영익을 「알렌」이 고쳤다는 이야기와 흡사하다. 이와 같이 중앙아시아에는 이 고장 특유의 약과 온천 그리고 독특한 치료법이 많다. 지대가 높고 춥지만 칭하이(청해)성으로 연결되는 타클라마칸고원에도 온천이 여러개 있다.
또 300종이 넘는 자연적인 약용식물과 각종 작물도 다양하다. 대황, 당귀, 동충하초 등 수많은 약재가 오늘날에도 생산된다. 이중 동충하초는 곰팡이균이 기생하는 나비나 모기의 유충이다. 매우 희귀하고 유명한 약용식물로 쿤룬(곤륜)산맥, 칭장고원 및 티베트에서 자라고 있다.
필자는 우루무치를 떠나 자동차로 투루판과 칭하이성의 수도인 시닝(서녕)으로 향했다. 필자를 위해 자치구 정부가 임대해준 힘센 일제 랜드로버로 운전기사, 통역과 함께 칭장고원을 닷새동안 달렸다. 우루무치를 벗어나면 바다보다 낮다는 투루판에 이르고 거기서부터 지대는 다시 높아진다.
시닝에 이르면 해발 3,000m를 넘어선다. 숨이 찼다. 고산병에 걸리지 않도록 뛰지 말라고 한다. 우루무치에 비하면 규모가 작지만 시장(서장)자치구 다음으로 티베트족이 많이 사는 고장이다. 해발 3,500m- 이상의 고원지대에서는 유목민들이 말과 야크, 양을 치면서 살고 있다.
8월 중순이라 날씨는 좋았다. 그러나 밤에는 5∼7℃ 가까이 떨어졌다. 비가 내리다가 한 시간쯤 뒤에 햇빛이 나고, 바람이 불면 먼지때문에 눈을 뜰 수 없었다.
2. 사욕, 약욕, 뜸요법
이 고장 전통의학 병원에서 인상적으로 본 것은 한여름에 많이하는 모래찜질이었다. 한문으로는 사욕이라고 하며 일종의 물리요법에 해당된다. 시골에서 천막생활하는 사람이 많다보니 관절염이나 만성적인 통증이 흔했다. 나이를 먹으면 이런 병을 예방하기 위해 사욕을 많이 했다.
두번째로는 쑥과 여러 가지 약을 넣은 물에 목욕하는 약욕법도 독특했다. 세번째는 뜸을 많이 떴다. 뜸을 무엇으로 뜨느냐고 물어보니 애구라고 써보인다. 우리나라와 같이 쑥 찜질을 하는 것이었다. 효과가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보편적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이 고장 사람들은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목욕을 거의 하지 않는다. 일생을 통해 서너번 밖에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위구르족, 몽골족, 카자흐족에게 만성병 예방과 치료에 인기있는 것이 바로 약욕법이었다.
전통의학 종합병원마다 입원실 옆에는 약욕실이 두세개씩 있었다. 하루 두세번씩 1∼2주동안 계속 약욕하고 한달쯤 쉬었다가 다시 두세번 약욕을 반복하면 웬만한 만성병이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쓰이는 약은 백엽, 두견화, 마황과 같은 생약재였다. 이중 마황을 뺀다면 모두 중앙아시아 특산의 생약들이다. 한족이 운영하는 중의원에서는 약욕을 하지 않는다. 필자가 찾은 뤄양(낙양)과 정저우(정주), 시안(서안)의 중의원에는 약욕실이 없었다.
위구르 전통 종합병원장에게 자세히 물어보니 아시아의 여러 고장에서는 온천요법도 좋은 치료법으로 쓰인다고 했다. 우리나라와 일본도 오랫동안 여러 가지 만성병 치료에 온천을 이용해왔다. 아마 중앙아시아의 풍토나 물이 귀해 목욕하기 어려운 생활환경에서 유래된 독특한 치료법이라 여겨졌다.
그러나 위구르족 전통의학병원이나 카자흐족의 민간의사들은 어느 의미에서 볼때 한의학과 중앙아시아 특유의 치료법을 함께 이용하고 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이 고장에서도 근래 인기를 끄는 것은 기공술이었다. 또 침구치료를 받으려는 환자가 많았다. 특이한 것은 베이징이나 시안의 중의원에서 쓰는 침보다 굵고 크지만 몽골이나 티베트의 것보다는 작았다.
물론 우리나라나 일본에서 쓰는 침보다는 훨씬 컸다. 중세 유럽의학과 마찬가지로 중앙아시아에서는 아직도 급성질환에 걸리면 피를 빼내는 사혈요법이 쓰이고 있었다. 이런 목적을 위해서라도 우리의 침보다 클 수 밖에 없겠다고 여겨졌다.
역사적으로 볼때 아라비아의학에는 병이 생긴 부위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피부를 태우는 뜸내지 구술과 함께 사혈요법이 많이 쓰였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도 관격이나 급체에 걸리면 피를 뽑는 사혈요법이 일반화한 적이 있다. 40∼50년전 필자가 어렸을 때 민간요법을 보는 것같아 감회가 깊었다.
◎중앙아 피부병 치료법/가중흑초종 가루를 사아단기름과 바르면…/비결은 고장특유 생약
3. 중앙아시아의 피부병과 약이야기
신장자치구에서 칭하이성에 이르는 중앙아시아의 전통의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피부병 치료법이다. 실제로 우루무치, 투루판, 헤티안(화전)에 있는 위구르 전통의학병원에서 러시아는 물론 파키스탄, 이란에서 온 환자들이 고치기 어려운 피부병을 치료받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베이팅(북정)에는 당나라때 설치한 도호부의 유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쿤룬산맥을 등지고 있는 헤티안에는 3년제의 위구르 전통의학대학이 있어 독특한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이 고장 사람들은 따가운 햇빛, 극심한 일교차, 과다한 자외선때문에 생기기 쉬운 각종 피부병에 잘 듣는 치료법이나 치료약을 자랑하고 있었다.
과학적인 견지에서 보더라도 자외선이 많은 햇빛에 오랫동안 노출되면 기미와 피부병이 잘 생기기 마련이다. 피부의 각질화는 노화를 촉진시킨다. 더운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30대만 되어도 피부가 쭈글쭈글해지고 살결이 두터워지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런 풍토는 이른바 백전풍이나 우피선같은 난치 피부병을 많이 유발한다. 백전풍이란 피부가 하얗게 변색되는 병이고 우피선은 살결이 쇠가죽같이 두껍게 각질화하는 피부병을 말한다. 현대의학이나 한의학으로는 고치기 어렵다. 아마도 반사막의 초원지대에서 한여름을 지내면서 목욕도 하지 않고 천막생활을 하다보니 잘 걸렸다고 생각한다. 치료약은 모두 중앙아시아 고유의 생약들이었다.
한문으로 작성된 처방전을 보니 가중흑초종을 가루로 만들어 사아단기름과 함께 바른다고 돼 있었다. 베이징이나 시안같은 곳에서는 들어보지도 못한 약들이었다.
귀국해서 이런 이야기를 잡지에 기고했더니 모 제약회사에서 연고나 고약을 개발하기 위해 다시 가보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여의치 않아 자료만 넘겨주었다. 서양의학의 역사를 보더라도 우리들이 오랫동안 사용한 약들은 대개 민간요법이나 전통의학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말라리아에 잘 듣는 키니네, 심장병 약인 디기타리스는 물론 아스피린도 전통의학의 산물이다. 우리나라도 전통의학을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연구, 새로운 약재개발에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허정 서울대보건대학원 명예교수>허정>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