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던트를 마치고 처음 사회에 진출했을 때의 일이다. 나와 수련을 함께 받은 여의사가 있었는데 공부도 잘 했을 뿐아니라 성격도 적극적이고 과감해 남자 의사들이 쩔쩔 매는 어려운 일도 척척 해내 우리들을 자주 놀라게 했다. 문제는 레지던트 수련이 끝난 후 취직을 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몇군데 취직할 만한 곳을 알아보았으나 모든 경력이 뛰어남에도 명백한 이유없이 거절당했다. 아마도 여자라고 그렇게 된 것 같았다. 이전까지는 비교적 실력에 의해서 평가되었는데 이제는 남성이냐 여성이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처음으로 세상의 벽에 부딪혀 좌절을 맛보게 되었다.그때 마침 어떤 종합병원에서 가정의학과 과장을 뽑겠다며 대학병원에 사람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대학병원의 과장은 이 여의사를 추천했는데 병원장은 여자라는 이유로 만나보지도 않고 거절했다. 과장은 틀림없이 만족할 터이니 다시 생각해보라고 병원장을 설득했다. 그러자 그 병원장은 내년에 남자의사로 바꿔준다고 약속하면 1년만 받아주겠다는 아주 해괴한 단서를 달았다. 과장은 그런 단서가 붙었다는 내용은 차마 그 여의사에게 말하지 못하고 그 병원에 취직하도록 했다. 여의사는 그 병원에서 가정의학과를 맡아서 환자를 진료하는 것은 물론 레지던트를 교육시키면서 자신의 임무를 훌륭히 해냈다.
그러나 일년이 지나자 병원장은 대학병원 과장에게 약속대로 남자의사로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사정을 전해들은 여의사는 자신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런 부당한 대우를 받을 수 없다고 병원장에게 항의했다. 병원의 각 과 과장들도 그 여의사가 모든 일을 뛰어나게 해왔는데 바꿀 필요가 있느냐고 했다. 병원장은 여론과 항의에 밀려 자신의 요구를 취소하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됐다.
의사가 되는 과정에서 여자들이 당하는 성차별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여자가 레지던트가 되기 위해 희망하는 과를 방문하면 『우리 과는 여자는 안뽑는다』면서 공공연하게 압력을 넣어서 지원조차 못하게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레지던트가 되면 몇년간 거의 24시간을 같이 생활하게 되는데 그과의 과장이나 선배 레지던트들이 같이 일하기 싫어한다면 그런 장벽을 뚫고 지원할 수 있는 배짱이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도 이제는 대학병원의 과장이 됐고 레지던트를 선발하는 입장이 됐다. 우리 과를 지원하겠다고 찾아오는 여의사들에게 나는 결코 여자라는 이유로 면접 점수를 차등하지 않겠다고 말해준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지켜왔다.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와 그가 낳은 딸과 그의 아내가 모두 여성인데 남성들은 왜 그다지도 노골적이고 조직적으로 여성들을 차별하는 것일까. 집밖에서 여성들을 차별하는 남성들은 자기 어머니와 딸 아내가 이런 차별을 받는다는 것을 알면 어떤 기분이 들까.
서홍관은 58년 전북 완주에서 태어나 83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했고 인제의대 가정의학과 교수로 서울백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시집 두 권을 낸 시인이다. 어린이집 교사인 아내, 아들 둘과 함께 서울 잠원동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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