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짚어보는 서양 역사철학의 역사헤겔의 역사철학 테제 2가지. 「세계사는 자유의 의식에 있어서의 진보다. 이 진보가 필연적임을 우리는 인식해야만 한다」, 「이성이 세계를 지배하며, 세계사도 이성적으로 진행됐다는 것이 이성의 사상이다」.
요즘 이런 얘기 듣고 『아, 인류역사의 본질을 한 마디로 꿰뚫은 경구여!』하고 감탄할 사람이 있을까. 젊은 시절 진보에 대한 꿈을 못 버린 사람이라도 그저 시들한 주장으로 들릴 것이다. 세상은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를 두들겨패 사망에 이르게 한 기억도 어느덧 가물가물하고 역사의 종말을 운운한 논자도 이제 그런 얘기 쑥스러워서 더 못할 시대가 됐다.
인류가 걸어왔고 걸어갈 길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라는 행위 자체가 의미를 잃은 것처럼 보이는 이 포스트모던 시대에 스위스 바젤대 철학부 에밀 앙에른 교수는 「역사철학」(독일어 초판·91년 발행)에서 새삼 서양 역사철학의 역사를 되짚는다. 헤로도투스에서 시작해 아우구스티누스, 볼테르, 부르크하르트, 니체, 딜타이, 가다머까지, 헤겔과 마르크스에서 정점을 이루는 근대 고전 역사철학을 중심으로 그 전후의 논의를 심오하고도 명쾌하게 재해석한다. 그리고 이러한 재해석은 역사철학이 용도폐기된 철학의 한 분야가 아니라 끊임없이 인간지성의 도전을 기다리는 중요한 분야임을 일깨워준다. 물론 필자는 여기서 새로운 역사철학을 시도하지는 않는다. 역사에 대해 철학적으로 진지하게 묻고자 하는 이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겠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헤겔로 박사학위를 받은 유헌식씨가 우리말로 옮겼다. 민음사 발행, 1만원.<이광일 기자>이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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