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씨 망명 관련 선심제스처… 실행까진 난관 많아미국은 장승길 북한대사 일행의 망명사건으로 토라진 북한을 달래기 위해 보따리를 하나씩 풀어보이기 시작했다.
클린턴 미 행정부는 16, 17일 뉴욕에서 있었던 북한과의 준고위급 접촉에서 미국인의 대북한 채권 규모를 조사하겠다는 방침과 정부차원으로는 최초의 식량조사단을 파견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17일 밝혔다. 미국인의 대북한 채권조사는 곧 미국내에 동결돼있는 북한 자산의 해제를 위한 전단계이고 식량조사단 파견도 정부차원의 대규모 식량지원을 위한 준비작업의 일환임에 틀림없다. 때문에 이같은 미국정부의 일련의 조치는 북한에 대해 「성의있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9일의 베이징(북경)접촉과 16, 17일의 뉴욕회담에서 장대사 일행의 망명과 관련한 중앙정보국(CIA) 개입설 등에 강력히 항의하는 북한측에 이같은 카드를 제시해 그들의 2차 4자예비회담 참여를 유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측은 장대사 일가의 망명과 관련해 3가지 조건을 미국측에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CIA 개입사실을 시인하고, 그들 형제가 횡령한 공금 및 북한이 입은 피해보상으로 1천만달러를 배상하며, 이들 일행을 한국이 아닌 제3국으로 보낼 것 등이다.
그러나 미국은 장대사 망명사건이 4자회담 개최문제 또는 북·미관계 개선문제와는 전혀 별개의 사안임을 설득하는 한편 북한측이 고대하는 경제원조 및 제재해제 등의 당근을 약속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하지만 미국측의 이같은 움직임은 아직까지는 「제스처」의 수준이라는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미국인의 대북 채권조사는 물론 경제제재 해제를 위해 필요한 조치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사전 준비작업일 뿐 동결자산 해제에 이르기까지 넘어야 할 산은 아직 많다.
우선 대북 경제제재 조치가 적성국교역법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경제제재의 완화는 미북간의 「전쟁상태」를 청산하는 관계정상화의 단계에 따라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또한 미국내법에 따라 테러국으로 지정돼있는 북한의 법적 지위를 해소키 위해서는 핵 및 미사일개발, 생화학무기 보유, 인권상황 등 여러 분야에서 진전이 요청된다.
식량조사단 파견도 역시 대북한 유인전략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까지 국제기구 및 비정부단체(NGO) 등을 통해 대북 식량지원을 해온 미국이 정부차원의 지원을 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국내외의 장애가 적지않다. 무엇보다 미국정부가 대규모 북한지원을 위한 재정을 마련하는데 예산상의 한계가 명확하게 그어져 있다. 더욱이 북한에 대한 강경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공화당이 과반수를 점하고 있는 의회는 여전히 한반도 상황의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는한 정부차원의 지원을 반대하고 있다. 때문에 미 행정부의 한 관리도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남북한간의 논의가 본격화하기전에는 대규모 지원은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워싱턴=신재민 특파원>워싱턴=신재민>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