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동남아 외환위기·대선 등 변수 많아/‘내실경영’ 원칙만 세운채 구체안 손도못대『어느것 하나 가닥을 잡을 수 없습니다. 첩첩산중에서 헤매는 느낌입니다』
주요 그룹들이 내년도 사업구도를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 예년 같으면 경제성장률이나 물가 환율 등 기본적인 거시경제지표예측을 바탕으로 그룹차원에서 가닥을 잡은 뒤 각 계열사에 사업계획수립을 시작하도록 지시해야 할 시점이지만 올해는 「내실경영」원칙만 세운채 구체적인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극도로 불안해진 금융시장이 언제쯤 안정될 것인지, 환율은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동남아의 통화위기 등 국제적인 변수들은 어떤지 등이 사업구도를 확정 짓지 못하는 직접적인 원인들이다. 계속되는 불황으로 경기회복이 지연되고 대통령선거후 정책의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점도 예년과 다른 변수다. 연말에 있을 대통령 선거는 재계의 사업계획 수립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18일 삼성그룹 고위관계자는 『이달말까지 경제 전반에 대한 예측과 대강의 수치들을 정해 내달부터 각 계열사별로 사업계획수립에 들어갈 계획』이라며 『그러나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들이 너무 많아 현재로서는 이 계획을 제대로 지킬 수 있을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경기가 지표상으로 나아질지 모르지만 현장의 감은 내년 3·4분기나 돼야 가시화할 것 같다』며 『지표경기와 현장경기의 괴리도 사업계획 수립을 어렵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그룹은 제철업진출 등 굵직굵직한 사업들을 내년중 어느정도 확정짓겠다는 내부방침을 정했지만 내년에 출범할 새 정부의 산업정책과 금융시장 동향등변수가 많아 사업계획수립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제철사업의 경우 공개적으로 추진계획을 분명히 했다』며 『이를 포함한 그룹의 금융 통신 위성사업 등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하지만 불투명한 경기에 대선정국까지 맞물려 올해말이나 돼야 사업계획을 정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올해 환율을 전혀 예측하지 못해 적지않은 환차손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주요 그룹들은 환율변화에 가장 민감한 반응들을 보이고 있다. 환율은 특히 주요 수출대상국의 외환위기 등 국제적인 변수와 함께 기업들의 수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자금 조달 및 상환은 물론 시장별 수출전략 수립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외사업비중이 아주 큰 대우그룹의 경우 동남아의 외환위기와 환율불안 등으로 수출은 물론 해외경영계획수립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국가신용도의 하락으로 해외시장에서의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은 해외전략의 가장 큰 타격이다.
재계 관계자들은 『확장 일변도의 기업경영을 구조조정 등을 통해 내실을 다지는 방향으로 바꾸겠다는 기업들의 의지는 그 어느때보다 높다』며 『그러나 국내사정이나 해외여건 어디를 봐도 예측가능한 변수들이 없다』고 말해 사업계획 수립의 어려움을 밝혔다. 관계자들은 따라서 『경제관련 정책 당국이 정치상황에 휩쓸리지 않는 일관된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며 불안한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정부의 조속한 대책마련을 촉구했다.<이종재 기자>이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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