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대기업들의 도산이 줄을 잇고 이로 인한 연쇄도산과 실직사태가 나라의 뿌리를 흔들고 있다. 산업부실은 금융부실로 연결되어 은행들마저 도산의 벼랑에 몰려 있는 상황이다. 외채는 쌓이고 환율은 오르고 주가는 바닥을 모르고 내려 앉고 있다. 전방위에서 협공당하는 위기국면이다.이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던가. 지난날 우리는 여러차례 경제위기를 겪었지만 이를 잘 극복해 왔다. 근래 일본은 우리와 유사한 거품경제의 어려운 터널로부터 용케도 빠져 나왔다. 우리는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현 경제위기는 관리능력의 부족이 자초한 것이며 이런 점에서 천재가 아니라 인재로 인한 정책실패 때문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정책실패는 위기의 진원을 다스리지 못했다는데 있다. 진원은 국제수지 적자이다. 경상수지 적자는 지난해 240억달러에 이어 올해도 160억달러에 이른다. 여기에 올해 원리금 상환액이 150억달러이므로 이를 합하면 올해 300억달러 이상의 빚을 더 져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외채가 쌓여 세계에서 브라질과 멕시코 다음의 세번째 채무국이 되고 보니 대외신용이 추락하고, 신용이 떨어지니 금리와 환율이 오르는 것이다. 신용이 떨어지고 환율이 오르기 때문에 돈 꾸기는 어려워지고 외국자본은 빠져나가고 있으며 이것은 다시 금융위기와 주가하락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의 정책실패는 이러한 국제수지 적자가 누적되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이를 방치했다는데 있다. 그러면 국제수지 적자는 왜 생기는가. 그것은 나라의 쓰는 힘이 버는 힘보다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고로 가정살림이나 나라 살림이나 버는 힘과 쓰는 힘의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한데 여기에 실패한 것이다.
쓰는 힘만 부풀어 있는 상황을 우리는 「거품」이라고 부른다. 90년을 전후하여 일본과 한국은 유사한 거품경제에 당면하였는데 일본은 93년부터 만 4년동안 허리띠를 졸라매고 이를 치유하였다. 그때 우리는 「신경제」라는 기치 아래 허리띠를 풀고 오히려 확대정책으로 치닫지 않았던가. 오늘의 위기상황은 그렇게 자초한 것이지만 또 하나의 실패는 정책이 경제현실과 괴리되어 헛돌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시책의 기조는 개방과 자유화라 할 수 있다. 세계화 추세에 맞추어 국내경제를 개방하고 여기에 맞추어 경제운용은 시장기능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산의 위험이 있더라도 기업이나 은행들이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그 방향이 옳으면서도 실효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부실기업문제나 금융자율화문제 또는 규제완화문제 등이 헛돌고 있는 것이다.
요즘 크게 문제되고 있는 부실기업대책을 예로 들어 보자. 우리는 지난날 여러 차례 기업들의 무더기 도산문제에 당면하여 부실기업을 정리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때마다 정부는 산업합리화법을 마련하여 정리에 수반하는 조세를 감면해 주고 필요한 지원을 해주었으며 이것으로도 안되면 8·3사채동결조치와 같은 극약처방을 활용하기도 했다. 어떻든 이런 방법으로 전체 부실액이 예컨대 100이라 하면 그중 70은 정부가 흡수해 주고 나머지만 채권은행에 넘겼던 것이다. 한편 채권은행쪽에서는 그 당시 예대마진이 높았기 때문에 그 부실채권을 감당할 수 있었으며 만일 벅찰 경우에는 한국은행이나 정부가 보태주었던 것이다.
그러면 지금 상황은 어떤가. 이제 그런 방법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하다. 개방과 자율화이니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기업체질과 풍토가 전연 달라지지 않았다는데 있다. 기업들이 빚으로 과잉투자하여 넘어지면서 막대한 부실채무를 사회에 내뱉고 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지 않은가.
그런데 시장에 맡기는 정책이니 정부는 나 몰라라 하고 부실채무 전부를 그대로 은행에 넘긴다. 한편 은행쪽에서는 금융개방으로 예대마진조차 내려가서 남의 빚을 떠맡기는 커녕 스스로의 몸을 가누기도 힘들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래서 모두가 헛돌고 있는 것이다. 경제위기를 극복하자면 먼저 정책위기에서 벗어나 관리능력부터 회생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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