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타계한 정한숙 고려대 명예교수는 평생을 국문학 연구와 창작에 진력한 문인이었다. 고희가 가까왔던 80년대 말까지도 그는 『나는 죽을 때까지 현역작가』라며 한 해 7편의 소설을 발표하는 것은 물론 늦깎이로 시작까지 하는 활동으로 조로현상에 빠지는 후배 문인의 귀감이 됐다.김소월의 「영변 약산 진달래꽃」의 고장인 평안북도 영변이 고향인 고인은 46년 월남했다. 전광용 정한모씨 등과 「시탑」동인 활동을 하던 그는 48년 「예술조선」에 단편소설 「흉가」로 데뷔한다. 6·25에 따른 전통문벌의 대립과 갈등, 신분을 초월한 사랑 등 봉건사회의 몰락을 그린 「고가」(57년)는 그의 대표작. 60년대에는 한 해 원고지 1만장에 달하는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치는 등 소탈하고도 겸허한 언어로 장편 「조용한 아침」 등과 200여편이 넘는 중·단편소설, 시집 「잠든 숲속 걸으면」 등을 남겼다. 대학에서의 연구와 강의도 빼놓을 수 없는 업적으로 「현대한국문학사」(82년)는 한국문학사 기술방법 정립에 기여한 명저로 꼽힌다. 이같은 창작과 연구활동 틈틈이 한국일보 지면에 연재한 칼럼 등으로 그는 대중과 문학의 거리를 좁히는 데도 노력했다.
강단을 떠난 뒤인 91년에는 문예진흥원장과 예술원회장을 겸임하면서 고인은 문예행정 발전에 남다른 의욕을 보이기도 했다. 평소 전통적 선비정신의 창조적 승화를 강조했던 자신의 주장처럼 그는 「선비」로 살다 간 문사였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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