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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날레’ 한가운데서/최민(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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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날레’ 한가운데서/최민(아침을 열며)

입력
1997.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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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도처에 대규모 영화제 연극제 전시회 등 굉장한 구경거리들이 마련되고 있다. 지방자치가 정착되어 가는 과정에서 지역마다 다투어 펼치는 국제문화행사들 덕분이다. 얼마전 개막한 제2회 광주비엔날레도 그중의 하나다. 반가운 일이다. 두번째로 열리는 비엔날레를 보면서 『아, 이제 우리나라의 지방행정단체도 스포츠만이 아니라 문화예술에까지 상당한 액수의 돈을 지속적으로 쓸 수 있는 형편이 되었구나, 또 이 분야에 돈을 쓰는 법도 점차 배워가고 있구나』하고 안심할 수 있었다.관람객 수가 2년전의 3분의 1 밖에 안된다고 걱정하는 보도도 있지만 비엔날레가 제자리를 잡아가는 증좌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무엇을 보러가는지도 모르는 채 강제 동원되었거나 강매 당하다시피 한 입장권을 들고 억지구경을 나섰던 첫번째 비엔날레의 군중을 제대로 된 관람객들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갑작스런 그 구경이 그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었겠는가. 문화예술에 대한 취향의 습득은 모방심리와 스노비즘(Snobism)에 의존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쨌든 자발적 참여와 교감을 통해 숙성되지 않은 문화적 소비는 빈 껍데기이고 허위일 수 밖에 없다.

현대미술의 변화하는 게임의 룰을 최소한이나마 이해하고 그 변화의 맥락을 나름대로 가늠할 수 있어야만 그 의미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실험적 작업들의 관람이 분명하게 확정된 룰을 누구나 익히 알고 즐기는 스포츠 관람과 같을 수는 없다.

문화에는 평준화의 논리가 기계적으로 먹혀들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문화만이 민주적인 문화도 결코 아니다. 스포츠와 예술은 이런 점에서 구별된다.

이제 문화예술행사들도 좀 더 특성화하고 관람객의 층을 더 분화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백성이 다 같이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구경거리를 일제히 보아야만 한다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정말 끔찍한 곳이 되어버릴 것이다. 행사들의 규모는 좀 더 작게, 그 반대급부로 좀 더 다채롭게 차별화하여 조직하고 관람객도 점차 세분화, 전문화하여야 한다. 문화를 획일적으로 통일시켜 하나의 양적 잣대로 재려는 습관을 털어버려야 한다. 비엔날레의 성공여부를 그 외형적 규모와 이에 걸맞는 입장객 수로 판단내리려 하고 그 수가 전에 비해 줄었다는 것이 크게 우려할만한 사항으로 이야기된다면 이야말로 우려할만한 일이 아닌가.

나는 문화예술을 스포츠와 마구잡이로 혼동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스포츠, 그것도 관람용 대형 운동경기를 「문화」라는 범주에 포함시켜서는 안된다고 속좁게 생각해서가 아니다. 올림픽이 국제정치적 이해관계와 상업주의로 오염되어 있다는 것을 뻔히 알지만 그런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금메달을 하나라도 더 따내면 박수를 보내는 백성 가운데 나도 하나다. 그러나 문화예술을 상업화한 스포츠와 너무 쉽게 동일한 것으로 여기고 심지어 과잉투자된 관제 스포츠행사에 문화예술이 기꺼이 봉사해야만 한다는 사고에는 반대다. 스포츠의 정치적 이용은 민주주의의 발전이나 시민의식의 성장을 더디게 하는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 문화예술이 스포츠 행사 진행에 약간의 도움을 줄 수는 있을지언정 이에 장식품으로 종속되어서는 안된다. 만약 그렇다면 국가적 타락이다.

스피드 섹스 스포츠가 대중의 얼을 빼서 정치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세가지 현대적 도구라고 비판적으로 이야기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시대에 뒤떨어진 구닥다리 소리로 들리겠지만 되새겨 볼만한 가치는 여전히 있다. 이 3S가 고도로 산업화하여 맹목적 이윤 추구의 거대한 체계가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

이를 세계적으로 주도하는 것은 미국의 자본이다. 텔레비전을 통해 미국내 농구경기를 보며 마치 자기 일처럼 흥분하여 떠드는 사람들이 없지 않나, 스피드 섹스 스포츠가 한데 버무러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Blockbuster)들이 최상의 시즌에 전국의 극장들을 휩쓸지 않나, 플레이보이의 표지에 나왔다는 교포 누드모델이 이 나라의 언론에서 일약 스타로 떠오르지 않나. 이 따위를 보고 식민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진다. 점잖고 귀족적인 것만이 문화라는 고루한 편견에 맞서 인기 끌어 잘 팔리는 것은 다 문화라는 무원칙이 횡행하는 세태다. 미국 것, 한국 것 가릴 것도 없다. 문화도 장사고 장사도 문화다. 스포츠도 모두 예술이고 예술도 모두 스포츠라는 식이다. 한마디로 혼란이다.

2002년 월드컵 행사가 가져다 줄 국민통합적 기능 및 산업적 이득과 문화적 손실을 함께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밝은 데가 있으면 그늘진 데가 뒤따른다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비엔날레 전시장 한 가운데서 엉뚱하게 여러 도시에 새로 건설될 월드컵 경기장들을 떠올리며 이런 생각들을 해보았다.<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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