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법정 스님의 「가을에는 편지를 쓰세요」라는 짧은 글을 읽으면서 까마득하게 잊고 지냈던 중·고교시절이 잠시 떠올랐다. 「편지」라는 두 글자가 기억의 저편에서 잠자던 추억의 파편을 하나씩 되살린 것이다. 지금은 일상의 통신수단이 전화와 삐삐, 전자우편(E-Mail)으로 대체된 시대이지만 80년대 중반 1가구 1전화시대 전까지 편지는 더할 나위없는 통신수단이었다.이성을 향한 그리움에 눈뜰 무렵 등하교 길에 우연히 마음속에 그리던 소녀를 만난다. 그리움을 전할 길 없어 애를 태우다 몇번이고 편지를 썼다 찢었다 한 추억은 아마도 40세이상의 남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치렀을 홍역일 것이다. 이제 연애편지는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먼 옛날 얘기로만 들린다. 연애편지 뿐만이 아니다. 시골에서 올라와 하숙이나 자취를 하던 몇몇 친구들은 매달 한 번 고향집에 편지를 띄우곤 했다. 용건이야 「향토장학금」을 빨리 부쳐달라는 내용이지만 그 말은 맨뒤에 추신으로 돌린다. 우선 「부모님전 상서…」로 시작해 안부를 여쭙고 공부 잘하고 건강하게 있다는 말을 올린 뒤 하숙비 또는 생활비를 보내주십사 하는 내용을 추가한다. 부모님에게 편지를 띄우던 친구들의 모습에서 당시에는 못 느꼈던 가족사랑의 마음을 느끼게 마련이다.
조선의 대사상가 다산 정약용(1762∼1836)이 유배지에서 자식에게 보낸 편지만큼 감동을 주는 글도 드물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박석무 편역)라는 제목으로 91년 창작과비평사에서 나온 이 책에는 가족사랑을 버팀목 삼아 18년 형극의 세월을 이겨낸 다산의 선비정신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내 귀양살이 고생이 몹시 크긴 하지만 너희들이 독서 정진하고 몸가짐을 올바르게 하고 있다는 소식만 들린다면 근심이 없겠다. 큰 애가 4월 열흘께 말을 사서 타고 온다 하였는데, 벌써부터 이별할 괴로움이 앞서는구나」. 두 아들 학연과 학유에게 보낸 편지는 부정이 철철 넘친다. 편지는 형식에 얽매임 없이 쓰는이의 가슴을 열어보이는 사연을 담기에 향기가 피어 오른다. 소중한 이에게 이 가을엔 편지를 써보자. 삐삐 등 첨단통신이 넘치는 시대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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