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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한풀이 한목소리 “아리랑”/「회상의 열차」 제2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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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한풀이 한목소리 “아리랑”/「회상의 열차」 제2신

입력
1997.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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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사 후원/“고국동포 보다니…” 역마다 감격눈물/강강수월래 한마당 “고향의 명절 느낌”지난 11일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한 「회상의 열차」는 이튿날 하바로프스크를 지나면서 방향을 북서쪽으로 튼뒤 꼬박 나흘여동안 일직선으로 대륙을 가로지르며 내달렸다.

만추의 시베리아 밤은 이미 겨울이다. 철로변에는 무서리가 내리고 차창밖으로는 언뜻언뜻 진눈깨비가 날린다. 끝간데 없이 펼쳐진 광활한 초원위로 삼나무와 히말라야 아카시아의 거대한 군락이 끊임없이 차창을 스쳐갔다. 새벽녘 희미한 빛을 받으며 신비로운 흰빛으로 떠오르는 자작나무 숲의 모습은 매번 숨을 멎게 하는 장관이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땅은 러시아역사에 피로 기록된 현장이다. 모스크바 세프킨대 맹동욱(67) 교수는 『스탈린은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를 개발하기 위해 소수민족과 반혁명분자로 낙인찍힌 러시아인 등 무려 6천만명을 이곳에 흩뿌리듯 내던졌다』고 증언한다.

이 대지를 가로지르는 열차 속에서 60년전 연해주의 고려인들도 뿌리뽑힌 삶의 설움과 앞으로의 운명을 알 수 없는 공포로 한달여를 떨어야 했다. 시베리아의 혹한과 굶주림을 견뎌내고 중앙아시아에 도착한 아이들은 10명중 4명도 채 되지 않았다. 어른들은 숨진 아이들을 철로변 차가운 땅에 미처 묻지도 못한채 피울음을 쏟으며 다시 열차에 올라야 했다.

하바로프스크―아무르강―치타―울란우데―바이칼호―이르크츠크. 열차가 멈추는 기착지마다 고려인들이 나와 동포들을 부여잡고 절절한 한들을 토해냈다.

하바로프스크역에 나온 황 안나(79) 할머니는 『타슈켄트로 강제이주됐다가 52년 소련정부가 남편만 사할린으로 보내 생이별을 한뒤 딸 다섯을 혼자 키우며 모진 고생을 했다』며 『그래도 이렇게 고국에서 온 동포를 만나니 좋은 시절이 된 것 아니냐』며 흐느꼈다.

울란우데역에 꽃다발과 빵을 들고 마중나온 고려인 20여명중 러시아 문화예술아카데미 동시베리아 학교의 김 아스예브게니(65) 교수는 『한국에서 직접 찾아온 동포들을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굵은 눈물을 쏟았다.

그러나 오랜 분단의 세월은 동포 사이에 또 다른 골을 만들고 있다. 하바로프스크에는 북한의 임산대표부가 있어 벌목공들이 1만여명나 되지만 그저 멀리 벌목차량이 지날 때 빈 손짓만 나눌 수 있었을 뿐이었다. 이곳 고려인사회도 동포들을 「큰 땅치」(중앙아시아 출신) 「하태치」(사할린 출신) 「북선치」(해방후 북한파견노무자)로 구분하고 있었다.

「회상의 열차」는 시간변경선을 세번이나 넘는 기나긴 여정끝에 17일 자정께 시베리아의 서쪽끝인 노보시비르스크역에 들어섰다. 그 늦은 시간에도 50명이 넘는 고려인들이 나와 몇시간을 기다려 동포들을 맞았다.

열차에서 내린 참가자들과 이들은 혈육을 만난 듯한 기쁨과 감격에 겨워 서로를 얼싸안았다. 돌연 누군가의 입에서 「아리랑」이 흘러나오면서 거대한 합창이 됐고 모두가 손을 부여잡으면서 강강수월래가 시작됐다. 이제는 고려인 사회에서 희미해져 가는 한가위명절 행사가 이역땅 달빛어린 플랫폼에서 감동적으로 재현되면서 60년 쌓인 한풀이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하바로프스크에서 합류한 한 아나톨리(57)씨는 『어린 시절 타슈켄트에서 살 때만 해도 단오, 한식, 추석엔 널도 뛰고 그네도 탔지만 요즘은 분위기가 예전같지 않다』며 『마치 고향에서 명절을 맞는 느낌』이라며 감격해 했다.

「회상의 열차」는 17일 하오 중앙아시아를 앞둔 마지막 기착지인 노보시비르스크역을 떠나 60년전 강제이주 고려인들이 맨몸으로 내던져졌던 통한의 현장으로 향했다.<노보시비르스크=김동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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