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국 경선불복 상식 어긋난 일/절차·규칙 무시하곤 ‘민주’ 말할 자격없어연말에 있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국은 그야말로 혼탁 속을 헤매고 있다. 추석 전인 13일 경기지사 이인제씨가 마침내 신한국당 탈당과 독자출마를 선언했는데 이와 같은 집권 여당의 분열과 지리멸렬은 여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 보아도 안타까울 지경이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소속 정당의 경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낙선 후보들의 분파적 움직임과 이를 효율적으로 제어하지 못한 이회창 대선후보의 정치력 부족에 있다.
이러한 사태는 우리의 상식에 비추어 참으로 이상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당내 민주주의를 이루어야 한다고 그렇게 부르짖던 경선 후보가 몸담았던 당을 떠나면서까지 독자출마를 고집할뿐 아니라 심지어 일부에서는 경선 결과를 파기하고 후보를 갈아야 한다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하기에 이르렀으니 참으로 이상한 당이고 참으로 이상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이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공개적으로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지식인들의 몸사림인지 모르겠다. 언론은 한술 더 떠서 이러한 현상이 재미있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본시 화합과 조화는 기사거리가 되지 않고 갈등과 대결이 환영받는 언론의 속성상 그런지는 몰라도, 이런 점에서 지금 우리의 언론이 과연 한국의 정치발전에 기여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경선에서 낙선한 사람들은 그 결과에 승복하고 이를 따라야 한다. 이것이 민주정치의 기본이다. 애당초 그럴 생각이 없었다면 경선을 주장하지도 말았어야 했고 거기에 참여하지도 않았어야 한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경선주자들은 열여섯번씩이나 경선결과에 승복하겠다고 서약했다는데, 서약을 했건 안했건 그 결과를 지키는 것이 민주정치의 기본이다. 이런 기본도 없는 사람들이 한국의 정치 지도자를 자처하고 이를 부추기는 무리들이 한국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있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경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의 논리는 이회창 후보의 국민적 지지도가 약해져서 정권 재창출이 어렵다는 것인데, 그야말로 궁색한 논리라 아니할 수 없다. 국민으로서는 정권 재창출이 안되면 사상 처음으로 야당이 집권하는 정권 교체가 되어서 얼마나 자랑스러울 것인가? 그때, 당인으로서는 대선에서의 패배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당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적 앞의 분열을 자초할 것이 아니라 당의 공식 후보를 밀어주어야 한다.
또 인기란 부침하는 것인데, 인기가 떨어졌다고 공당의 공식 후보를 부인한다면 이 또한 하나의 부끄러운 코미디가 될 것이다. 그러려면 애초에 경선은 왜 하고 더 나아가 선거는 왜 하는가? 그저 여론 조사로 대통령을 선출하면 그만일 것 아닌가. 그 높던 대통령의 인기가 바닥을 헤매는데 그러면 대통령 갈자는 얘기는 왜 안하는가?
민주주의는 무어니 무어니 해도 절차가 생명이다. 어떤 이들은 민주주의의 과정을 형식에 불과하고 절차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하기도 하지만 정해진 절차와 규칙을 지키지 않거나 그것에 의해 정해진 결정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사람들은 자신이 아무리 민중을 사랑하고 국민에게 봉사한다고 생각하더라도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없다. 선진국의 정치가 발전한 것은 절차의 엄격함과 그 결과에 대한 무조건적인 승복에 있다. 당선자의 수락 연설보다 낙선자의 승복연설이 더 아름다운 것이 선진정치의 멋이다. 당선자나 낙선자 모두 절차의 중요성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한국 정치와 한국 정당이 모처럼 맞은 도약의 회를 살려 나가야 할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