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부유한자라도 훌륭히 일생을 마치지 못하는한 행복하다 할수는 없다하늘이 맑고 대기가 청명한 것이 바라만 보고 있어도 사는 기쁨을 느끼게 해준다. 거기다가 며칠간의 휴식과 반가운 이들과의 만남으로 마음까지 풍족한 사람들에게 대체 무슨 엉뚱한 수작을 붙일 수 있을 것인가. 옛날 이야기를 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 싶다.
그리스의 가장 오래된 역사책인 헤로도투스의 「역사」를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나중에 그리스의 현명한 사람 일곱 중의 하나로 손꼽히게 되는 아테네의 솔론이 10년 예정으로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다가 당시 위세를 떨치던 리디아의 수도 사르디스에 도착하였다. 그 나라의 왕 크로이소스는 멀리서 온 이 유명인을 맞아 들여서 우선 호화로운 재보로 가득찬 자신의 보물창고를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솔론에게 당신이 본 사람중에 누가 제일 행복한가 하고 물었다. 속으로는 자신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솔론은, 아테네의 텔로스라는 사람이 제일 행복하다고 대답하였다. 그 이유는 우선 『번영하는 나라에서 태어났고』, 다음으로 『훌륭한 자식을 두었고, 또 그들 모두에게서 아이들이 태어나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잘 살았으며』, 마지막으로 아테네가 이웃나라와 전쟁을 할 때 용감하게 싸워 적을 패주시키고 전사하여서 『그 임종이 실로 훌륭하였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그 나라에서 태어난 것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또 그 나라를 위하여 싸우다 죽는 것이 훌륭한 죽음이 되게 하는 그런 나라를 생각해 본다. 그것은 단지 정치가인 솔론이 모든 일을 나라라는 관점에서 평가하기 때문이라고만은 할 수 없지 않을까. 그 「행복한 나라」는 필경 거기 모인 사람들이 그것을 자기의 존재가 그것 없이는 영위될 수 없는 필연의 전제라고 생각하는 나라, 또 나라의 일이 되어가는 모습에서 자기 삶의 진정한 보람을 찾을 수 있는 나라, 다시 말하면 독립적이고 도덕심 있는 개인이 나라 일에 스스로의 책임을 느끼는 그러한 공동체이지, 그것을 상관없는 남의 일로나 여기게 되는 나라는 결코 아닐 것이다.
어쨌거나 자신의 기대와는 다른 이 대답을 듣고 왕은 속을 끓이다가, 다음으로 행복한 사람은 누구냐고 물었다. 이번에도 엉뚱한 대답을 들은 왕은 화가 나서 외쳤다. 『아테네의 친구여, 그대는 나를 그러한 서민들에게도 미치지 못하는 존재라고 보는데, 그대는 나의 이 행복을 아무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는가?』 이에 대한 솔론의 대답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사람의 일생을 70년이라고 하면 2만 몇천일이 되는데, 그 가운데 하루라도 똑같은 날이 없다. 사람이 이처럼 오랜 세월 살아가는 동안에는 온갖 일이 다 벌어진다. 그러니 어떠한 일에 대해서도 그것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그 결말을 끝까지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부유한 자라도 「끝까지 훌륭하게 일생을 마칠 수 있는 행운」을 가지지 못하는 한, 결코 행복하다고 할 수 없다.
그리하여 솔론은 말한다. 『인간은 모든 것을 다 갖출 수 없습니다. 저것이 있으면 이것이 없는 터인지라, 될 수 있는 한 부족한 것이 적은 상태에서 지낼 수 있고 그 위에 훌륭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 왕이시여, 바로 이러한 사람만이 행복하다고 불릴 가치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결국 사람은 죽어서야 행복한지 아닌지를 알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솔론의 이 이야기는 크로이소스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는 현재의 번영을 제쳐두고 모든 것의 「결말」을 보라는 솔론을 어리석은 자라고 확신하고 냉담한 태도로 떠나 보냈다. 그러나 그 후 크로이소스왕은 아들을 멧돼지 사냥에서 잃어 실의의 나날을 보내다가, 결국 페르시아의 키로스 2세의 공격을 받아 수도를 점령당하고 자신은 포로의 몸이 되었다. 그의 왕국 그리고 그의 「행복」은 이로써 종말을 고하였던 것이다. 지금 조그만 마음의 풍족을 느끼는 이 때에, 또는 어떤 대망의 자리를 다투어 앞뒤 가릴 수 없는 이 때에, 뒤집어 모든 것의 결말을 보아야 한다는 말은 귀기울일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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