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의 비극적인 죽음은 세계인의 관심을 모았다. 매스컴에서 하도 떠들어대는 바람에 신문을 꼼꼼하게 보지 않는 사람도 다이애나의 사생활 하나 하나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 정도였다.미디어가 다이애나를 죽음으로 몰아갔다. 그의 사망소식을 접하고 나는 화가났다. 「그렇게 어처구니없이 죽다니…. 마치 먹이를 노리는 사냥꾼처럼 따라다니던 파파라초가 결국 다이애나를 죽였구나」 프랑스인인 나는 프랑스에서 사고가 나고 프랑스의 파파라초가 가장 악질적이라는 보도를 접하면서 더욱 화가 났다.
하지만 파파라초에게 「존재의 이유」를 마련해주는 것도 바로 호기심 많은 우리들이다. 이번 사고현장에서도 구경꾼들에게 어떤 기자가 사고 모습을 생생하게 담은 사진이 실린 신문이나 잡지를 사겠느냐고 묻자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다이애나의 사고와 더불어 나는 한국인과 관련된 두가지 비극적인 사고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괌과 캄보디아에서의 비행기 추락사고. 한국에서는 끔찍한 사고가 날때마다 유족들의 모습이 TV를 통해 생생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나는 그 같은 사건·사고의 중계가 TV에 나오면 당장 TV를 꺼버릴 정도로 싫어한다. 혹 「슬픔에 잠겨있는 사람들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유족이 된다면 나는 결코 슬픔에 몸부림치는 내 모습을 방영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유족들의 항의는 거의 없는 것 같다.
파파라초가 귀찮게 구는 대상은 주로 유명인사들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경호원을 고용할 수도 있고 소송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비행기 추락사고로 남편과 아들이 죽었다는 날벼락같은 소식을 듣고 공항에 뛰쳐나와 울부짖는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게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까.
물론 평범한 사람들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법적 권리를 보장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의 불건전한 호기심은 결코 그들을 가만 두지 않을 것 같다.<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프랑스인>형사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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