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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대통령을 보고싶다(말바꾸는 정치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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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대통령을 보고싶다(말바꾸는 정치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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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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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작은정부·공정인사 공약 불발/노태우­부패척결 강조하며 부정축재/전두환­남은 비자금 최근까지도 발견/이승만­국민과의 약속 어기고 3선개헌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안위를 책임지는 대통령의 허언과 거짓말은 국민의 가슴을 멍들게 하고 결국 국가의 뿌리를 흔든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불행하게도 약속을 지키는 정직한 대통령을 보지 못했다.

처음 열화와 같은 성원을 얻었던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 개혁」이 지속되지 못하고 휘청거린 것도 취임전의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취임초 90%를 넘던 인기도는 「쌀수입 절대 불가」라는 대선 공약이 깨진 93년말부터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밖에 「작은 정부」 다짐은 해양수산부 신설 등으로 오히려 뒷걸음질했고 정부인사에서 지역편중 해소 공약도 지켜지지 않았다.

대통령 자신은 한푼의 정치자금도 받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주변의 비리는 대선 후보시절부터 「윗물 맑기」를 강조했고 취임후 대대적인 사정바람을 일으켰던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거짓말을 가장 많이 한 대통령으로 꼽힌다. 그는 취임전부터 줄기차게 부정부패 척결을 강조했다. 88년 2월의 취임사에는 『국민의 비원을 반드시 성취해 도덕성이 높으며 그 도덕성으로 말미암아 신뢰받는 정부를 만들고 말 것』이라는 약속을 담았다. 그러나 그는 부정축재로 「헌정사상 최초로 구속된 전직 대통령」이 됐다.

특히 88년 11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법처리 제외 방침을 밝히는 대국민성명에서 『기업인이 어떤 특혜나 변칙적 지원도 기대할 수 없게 하겠다』고 밝혔지만 그 순간에도 수많은 특혜와 「정치자금」이 교환되고 있었다.

거짓말에 대한 뒷처리는 한편의 코미디였다. 95년 4,000억원 비자금설로 곤경에 처하자 『해괴하고 황당한 이야기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세계에서 제일 잘 참는 나도 더이상 참을 수 없다』고 화를 냈다. 국회에서 비자금 은닉 사실이 폭로되자 『제발 수사를 해서 진상을 밝혀 달라』고 버티기도 했다. 진상이 백일하에 드러났을 때는 『통치자금은 잘못된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 정치의 오랜 관행이었다』고 변명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국민을 속였다. 88년 11월 백담사로 떠날때 정치자금으로 쓰고 남은 돈은 국고에 환수된 139억원이 전부라고 했지만 최근까지도 비자금이 발견되고 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군인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결국 스스로 나서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의 약속 깨기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자신의 약속을 어기고 3선 개헌을 할 때부터 이어져 내려 온 우리 정치의 악습이었던 셈이다.

물론 지켜진 대통령의 약속도 있다. 전 전대통령의 7년 단임 약속은 많은 국민이 의심했으나 분명히 지켜졌다. 노 전대통령도 주택 200만호 건설 공약을 우여곡절을 겪으며 그대로 지켰다. 그러나 워낙 큰 거짓말이 들통나는 바람에 그 의미는 희석돼 버렸다. 수없이 무너져 내린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장기간의 회복기를 필요로 하고 있다.<이상연 기자>

◎“경선승복”은 작은 용들의 허언/신한국 탈락 주자들 약속 뒤집고 딴생각/김덕룡·최병렬씨만 승복

97년 7월22일 저녁 서울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는 김영삼 대통령과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 등 각계 인사 1,000여명이 모였다. 여당으로는 사실상 최초인 대통령 후보 경선과 당선자를 축하하는 「후보자 선출 축하연」 자리였다. 경선포기를 선언한 박찬종 고문은 불참했지만 이인제 경기지사, 이한동 김덕룡 최병렬 의원과 이수성 고문 등 경선 주자들이 참가해 이대표의 본선 승리를 기원하며 건배했다.

이자리에서 이한동 의원은 『300만 당원이 정권재창출에 흔쾌히 동참, 이후보의 압도적 승리를 이뤄내자』며 잔을 들었고 이수성 고문도 『이후보의 대통령 당선때까지 전 당원이 일치단결해 무거운 짐을 나눠 지자』고 앞장서 호소했다.

이인제 지사는 『우리의 희망 이회창 후보 탄생을 축하하는 시간을 갖게 돼 한없이 기쁘다』며 『당의 단합과 이후보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라고 건배를 제의하기도 했다. 적어도 이때까지는 경선주자들이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면서 한걸음 성숙한 정치를 보여주는 듯 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부터 상황은 일변했다.

이수성 고문은 경선 며칠 뒤 기자들과 만나 『지금같은 구조로는 이대표를 돕기 힘들다』고 축하연에서의 말을 뒤집었다. 미국 방문길에서는 「호남 대통령론」을 밝힌 것으로 전해져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8월초 귀국해서는 『당인으로서의 도리를 다하겠다』는 입장으로 되돌아 갔다가 보름후 다시 『로마의 경우 군역을 지는 사람만이 자유시민으로서 국정에 참여했다』며 우회적으로 이대표를 공격하고 나섰다.

『그간 방치했던 도정을 살피는 일이 급선무』라며 경기도청으로 돌아갔던 이지사는 이대표 지지율 하락을 틈타 지사직 사의를 표명한뒤 대선 단독출마를 선언했다. 이한동 의원도 「병역 정국」이 한창이던 8월말 『국민은 도덕성을 믿을 수 있는 정치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고 이대표를 공격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결국 6명의 경선 탈락자 가운데 김덕룡 최병렬 의원만이 깨끗이 결과에 승복했을 뿐이다. 나머지 경선 주자들은 『경선규정을 따르고 경선 결과에 100% 승복할 것』이라던 다짐을 뒤로 한 채 막이 내린 지금도 관객의 손을 잡아 끌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집권당 최초의 경선으로 민주적 정당정치의 초석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던 신한국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은 아직 이들에게는 진행형인 셈이다.<염영남 기자>

◎정치인 왜 공약하나/선거구민 화려한 공약선호·예산부족 등 이유

『거짓말을 하고 싶어서 하는 정치인이 어디 있겠습니까. 공약을 안지키고도 재선된다고요? 지역구민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공약을 안지키면 지역구 분위기가 냉랭해져서 다음 선거때 큰일납니다. 이런 공약은 필사적으로 지켜야 합니다. 간혹 못지키는 약속이 있는데 정부 예산문제가 걸려있는 것이 100%라고 보면 됩니다. 부딪쳐 봤는데도 안되더라고 설명하면 주민들도 이해해 줍니다. 정말 나쁜 부류는 선거전에는 여당의 실책을 비난하다가 당선되면 당을 옮기거나 뒤로는 검은 돈을 받으면서 깨끗한 척하는 사람들이죠』

한 야당 의원의 말처럼 정치인의 약속 위반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예산을 따내려고 노력했지만 안되니 할 수 없는 일이고 당을 옮기게 된 것도 지역구민을 위한 결단이다.

『강물이 없어도 다리를 놓겠다는 사람이 정치인』이라는 영국속담처럼 정치인은 당선을 위해서라면 무슨 말이라도 하는 사람으로 인식돼 있다. 하지만 당선후의 행태가 최소한의 신의마저 깨는 것이라면 적절한 제재가 따라야 한다는 것이 한결같은 지적이다.

정치인의 거짓말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정치학자들은 『지키기 어려운 약속이라도 공익을 위한 것이라면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정치지도자』라고 규정한다. 정치지도자는 상징적인 구호를 내 걸어 국민의 의욕을 북돋워야 한다는 것.

미국의 케네디 전 대통령은 『모든 계층의 가난을 몰아 내겠다』는 공약을 확실히 지키지는 못했지만 흑인 등 소외받는 사람들에게 꿈을 심었고 많은 부수효과를 가져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 비슷한 사례로 꼽힌다.

국민이 공약의 실현 가능성 등을 꼼꼼히 따지기 보다는 우선 화려한 것을 바라는 것도 정치인의 공약을 부추긴다. 개발제한·고도제한 구역 주민에게 선거때면 모든 후보가 규제를 풀겠다고 다짐한다. 『실현 가능성이 낮은 것을 알지만 나만 그 공약을 빼는 것은 정치적 자살』이라는 게 정치인들의 한결같은 해명이다.

가장 두드러진 돈문제 관련 거짓말도 나름대로의 이유는 있다. 정치인들의 주장대로 고비용 정치현실과 법규정의 괴리가 거짓말을 낳는 것도 사실이다. 「정태수 리스트」에 오른 정치인들은 한결같이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지만 수사 결과 혐의가 깨끗이 풀린 사람은 거의 없었다. 돈문제는 사법처리 대상이 되기 때문에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텨본다는 식이었다. 또 처벌을 받아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이 지금까지의 정치현실이었다.<이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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