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초롱초롱빛나리(8)양이 끝내 살해돼 배낭속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경악과 분노를 억제하기 어렵다. 곧 어머니가 될 임신 8개월의 여성이 초롱초롱 밝고 착한 어린이를 유괴해 살해한 범죄에 가담한 이 끔찍한 인성마비의 시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범인은 4년제 대학을 나와 전문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한 예술학도이고, 인형극단을 운영하는 예술인과 결혼해 극단일을 도우며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영위하던 여성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더욱 통렬한 충격을 받게 된다. 인간성의 가장 밑바닥을 울려 감동을 얻어내는 예술, 그것도 어린이들의 티없는 감성에 호소하는 인형극을 업으로 삼아온 사람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지 믿어지지 않는다. 더구나 범인은 현직 고급공무원을 아버지로 둔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경찰이 범행현장에서 불심검문에 걸려든 범인을 놓아주어 나리양을 무사히 구출할 단 한번의 기회를 놓쳤다는 사실이다. 범인은 유괴 다음날 명동의 다방에서 나리양 집에 협박전화를 걸었다. 전화 발신지 추적으로 이 다방에 출동한 경찰은 임신부라는 한가지 이유로 범행현장에 있던 20대 여자를 풀어주는 실수를 범했다. 협박전화 현장에 있던 13명중 한사람인 이 용의자를 좀더 세밀히 조사했더라면 나리양이 희생되기 전에 구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비록 범인은 검거했지만 이번 수사에서 가장 큰 아쉬움이다.
공범들이 잡히지 않아 속단할 수는 없지만 범인은 1,000만원이 넘는 카드빚과 사채 300여만원을 갚을 길이 없어 범행을 저질렀다 한다. 분수에 넘치는 소비생활과 외상거래를 조장하는 신용사회의 또 다른 병폐라 할 것이다.
이 세상에 완전범죄는 존재할 수 없다. 더구나 피해자 가족과 부단히 전화를 통해야 하는 유괴범은 반드시 붙잡히고 만다는 것을 96년 원종하(7)군 유괴사건 등 최근의 여러 사례들이 입증해 주었고 이번 사건도 여기서 단초를 얻었다. 이 점은 경찰수사의 개가다. 다만 유괴사건에서 전화의 발신지 추적은 기본적인 수사기법이 된지 오래인데 이런 상황에서 공개수사가 과연 옳았는지는 다같이 한번 되새겨 봐야 할 일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범죄계층이 나날이 불가측으로 변해 가고 있는 지금 과거와 같은 사회신뢰를 밑바탕으로 한 어린이 보호가 과연 괜찮은지도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이를 둔 사람들은 그들이 되도록 이 험한 세상에 무방비로 노출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할 일이다. 자식을 보호하는 최종적인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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