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세 위구르족’ 그 비밀은…/자연환경·식생활·전통의학 3박자 고루 갖춘데다 장수 타고나고 성격도 낙천적베이징(북경)에서 신장(신강)자치구의 수도 우루무치(오로목제)까지는 기차로 무려 4∼5일, 비행기로는 4시간가량이 걸린다. 그만큼 먼 고장이다. 신장자치구는 중국에서도 땅 덩어리가 가장 큰 성이다. 프랑스보다 4배, 일본보다는 6배나 크다. 사막과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이 지역은 옛소련은 물론 몽골, 아프카니스탄, 파키스탄, 인도와도 국경을 맞대고 있다. 여기가 바로 비단길(실크로드)의 요충지로서 쿤룬(곤륜)산맥, 타클라마칸 사막, 카라코람 고원(고원) 등이 맞대고 있는 오아시스와 분지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1. 비단길따라 위구르까지
중국에서는 비단길을 한문으로 「사주지로」라고 쓴다. 시안(서안)에서 시작해 둔황(돈황)을 벗어나면 흔히 서역이라고 부른다. 신장자치구는 바로 이 비단길이 톈산(천산)북로와 남로로 갈라지는 길목에 위치, 동서문화의 교류가 매우 잦았던 고장이다.
아침 9시에 떠나는 비행기편으로 우루무치에 내리니 북쪽의 톈산에 쌓인 하얀 눈이 인상적이었다. 8월의 찌는 듯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베이징과 달리 여기는 이미 가을분위기가 완연했다. 자치구 위생부에서 보낸 차를 타고 몇달 전 문을 연 「홀리데이 인」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오후에는 위생부 직원과 3주일간의 여행계획을 짰다.
중앙아시아에 사는 사람들은 크게 3∼4개 종족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 첫째가 위구르족이다. 중국사람들이 쓴 역사책에는 이들이 회골족으로 기록돼 있다. 둘째, 회교도인 우즈베크족과 타타르족도 산다. 셋째, 같은 회교도지만 얼굴 모습은 한족에 가까운 타지크나 카자흐족이다. 이밖에 몽골족과 만주족, 한족도 있다.
인종이 서로 다르듯 이들의 전통의학이나 민간요법도 한의학과는 다른 점이 많다. 혜초 스님이 지적했던 대로 이 곳은 한 때 불교문화권에 속해 있었다. 최근 투루판(토로번)에서 출토된 자료를 보면 「서역제선소설요방」이나 「서역바라선인방」과 같은 불의서가 꽤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원형 그대로 보존된 불교 의서는 하나도 없다.
이 고장은 10세기경부터 이슬람 문화권인 「하리한」왕조가 들어서면서 아라비아 의학의 강력한 영향을 받게 됐다. 아라비아 의학은 원래 동로마에서 그리스 의학을 받아들였다. 이 때문에 그리스 자연철학의 사원소설에 입각, 화·기·수·토의 사체액설로 모든 병을 설명한다.
이는 오운육기설을 따르는 한의학과는 크게 차이가 난다. 이런 사정은 이튿날부터 찾아간 이 고장에서 가장 큰 전통의학 치료기관인 「위구르 종합병원」내의 의학사박물관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2. 아라비아 의학과 흑사병
서양의학사의 시대구분에 따르면 아라비아 의학은 동로마의 비잔틴 의학을 이어받아 서기 732년부터 1096년까지 거의 4세기 동안 세계의학사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서양사에 나오는 바와 같이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동로마를 건설하고 헬레니즘 문명을 재건하는데 힘썼다. 이 시기 동로마인들은 알렉산드리아와 잦은 접촉을 통해 서로마제국의 전통과 유산을 물려 받았다.
그러나 동로마제국도 그 빛을 잃게되자 자리를 옮겨가게 되었다. 정치적으로 볼 때 당시의 아라비아제국은 서쪽으로는 스페인, 동쪽으로는 중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력이 대단했다. 이들은 중국의 원나라나 청나라와 비슷하게 그들이 지배한 점령지의 문화를 보존했다. 따라서 고대 서양의학도 아라비아 문화권에서 보존되고 발전됐다.
아라비아제국은 동로마에서 서양의학을 전수받았지만 종교적 이유때문에 인체해부를 엄격히 금지, 주로 약물요법에 의존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 의학의 전통을 이어받았으면서도 자연치유력을 중시하는 자연요법의 원칙을 버리고 연금술에 힘입은 약물요법이 크게 발전한 것이다.
중국에서도 한족의 제국이었던 송나라가 몰락한 후 이민족인 몽골족의 왕조인 원나라가 중국을 지배했다. 「마르코 폴로(1284∼1324)」가 중국을 찾았던 이 시기에 원나라는 아라비아인과의 교류는 물론 그들의 사상과 종교에도 매우 너그러워 비단길을 통한 교역이 잦았다. 아라비아 의학과의 교류도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런 경향은 몽골제국의 세계 지배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이 시기에 중국은 중앙아시아를 통해 아라비아산 보석과 인도의 대풍자, 알코올, 아편 등을 받아들였다. 이와는 반대로 이란과 아라비아는 각종 의학경전과 대황을 가져갔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베이징에서도 인도와 시리아, 이란에서 온 의사들이 중국 의사들과 함께 환자를 진료했다고 전해진다.
의학지식의 교류나 문물의 교역만이 빈번한 것은 아니었다. 맥닐같은 역사학자의 주장에 따르면 원나라가 1280년부터 1368년까지 중국은 물론 비단길을 넘어 대부분의 유럽과 중동지방을 그들의 세력권 아래 넣게되자 질병도 서로 옮겨가게 됐다고 한다.
몽골제국의 세력이 절정에 달했던 1279년부터 1350년사이 그들은 중국 뿐만아니라 러시아의 거의 대부분 영토와 중앙아시아, 그리고 이란과 이라크도 지배했다. 이에 따라 하루 160㎞씩 몇주동안 계속 달리는 파발꾼이나 느린 속도로 먼거리를 왕래하는 대상, 군대 등이 통과하는 커다란 교통망이 1350년대까지 유지됐다. 그리고 이들 파발꾼과 대상, 군대를 따라 수많은 전염병도 퍼졌다. 그 중 세계문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질병이 1340년대 세계적으로 대유행했던 흑사병이다.
맥닐에 따르면 몽골의 초원에 사는 들쥐에 서식하던 흑사병균이 들쥐와 함께 유럽으로 건너가 흑사병이 만연했다. 중국에서는 흑사병이 쥐 때문에 생기는 병이라 하여 서역으로 부른다.
◎위구르족의 생활/신선한 말·양고기 즐기며 회교금식 잦고 대가족 이뤄
3. 위구르족의 장수비결
이 고장에는 비가 잘 오지 않는다. 그러나 여름에도 흰눈이 쌓인 톈산에서 녹아 내리는 만년설에 힘입어 포도와 멜론, 살구같은 과일이 많이 난다. 시골에서는 주로 양을 치고 산다. 중앙아시아의 장수촌은 좀처럼 사람들이 드나들기 어려운 오지에 있다. 120세나 130세된 노인도 허다하다. 장수의 비결은 위구르족의 환경과 식생활, 그리고 전통의학인 유의학에서 찾을 수 있다.
「홀리데이 인」호텔은 음식도 깨끗하고 잠자리도 편했다. 자치정부가 자랑하는 「웨이이(유의)종합병원」 외빈접대실에 들어서니 몇해 전 136세로 죽었다는 유의사 「아지아길」의 사진이 벽에 걸려 있었다. 그는 여기서 비행기로 한시간이면 갈 수 있는 허톈(화전)에서 유의사로 근무했다고 한다.
우루무치시는 마치 인종 전시장같은 인상을 풍겼다. 자동차로 달리다 보면 위구르족의 집단 시가지가 나온다. 돼지고기를 절대 먹지 않는다는 이른바 칭전(청진)식당이 즐비하다. 그런가 하면 조금가다보면 돼지머리나 돼지고기를 통째로 걸어놓고 손님을 부르는 한족의 거리가 나온다. 또 티베트족과 몽골족의 거리에는 누렇고 붉은 승복을 입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다시 2∼3분 가니 큰 길에서도 말을 타고 다니는 타지크나 카자흐족의 마을이 나타났다.
주정부의 공식통계에 따르면 신장자치구에는 21개의 각기 다른 종족(1만명이상 기준)이 산다고 한다. 물론 이 중에서도 인구가 가장 많고 장수하는 종족은 위구르족이다. 그러나 자리가 높아지고 생활에 여유가 생겨 도회지로 옮겨온 위구르족은 오래살지 못한다고 한다.
위구르종합병원의 주임의사에게 위구르족이 오래 사는 비결을 물어보니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었다. 첫째, 장수하는 집안에서 장수하는 사람이 태어난다는 얘기였다. 즉 위구르족은 장수할 수 있는 유전적인 소인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둘째, 양고기나 말고기를 많이 먹되 신선한 것을 골라 섭취한다고 했다. 이 고장의 양고기나 말고기는 기름기가 적고 자연상태에서 키운 것이기 때문에 건강에 좋다는 말도 덧붙였다. 실제로 시골에 가서 양고기를 여러 번 대접받았지만 우리나라나 미국에서 먹던 양고기 맛과는 사뭇 달랐다. 노린내가 전혀 나지 않았다.
셋째, 개방적인 성격을 꼽았다. 이 고장 사람들은 유목민들이기 때문에 성격이 활달하며 잘 웃고 잘 싸웠다. 넷째, 3대나 4대가 함께 어울려 대가족 생활을 하는 것이 장수에 도움을 준다는 얘기였다.
이들은 또 회교 율법에 따라 하루에 다섯 번 이상 기도드리며 한달씩 금식, 정신을 맑게 했다. 이밖에 과일을 많이 먹고, 약을 적게 먹는 것도 장수에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었다. 장수의 비결은 의외로 평범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볼 여지가 많다고 느꼈다.<허정 서울대 보건대학원 명예교수>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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