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거품된 ‘영 귀족 꿈’/이집트출신 거부 ‘왕세자비 며느리’ 희망 사라져다이애나 영국왕세자비의 죽음으로 가장 큰 아픔을 겪은 사람은 모하메드 알 파예드가 아닐까 싶다. 이 사고로 영국민은 「마음의 여왕」을 잃었지만, 그는 사랑하는 아들 도디와 다이애나, 그리고 이들의 결합을 통해 영국 귀족사회의 당당한 일원이 되고자 했던 오랜 꿈마저 한꺼번에 잃고 말았다.
그는 자신을 100여년 역사를 지닌 이집트의 지주가문 출신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실은 교사 아버지를 둔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났다. 소상인으로 나섰던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것은 50년대 사우디 아라비아의 억만장자 아드난 카쇼기와의 만남이었다. 나중에 처남이 된 카쇼기의 도움으로 영국기업들의 페르시아만 개발사업 계약을 중개, 엄청난 부를 거머쥐면서 현재의 파예드가를 일구게 됐다.
그때부터 그는 영국 시민이 되겠다는 열망을 키웠다. 런던으로 활동무대를 옮긴 그는 해로드 백화점, 유머잡지 「펀치」, 풀햄 축구클럽, 스코틀랜드의 밸너고성을 차례로 사들였다. 자선활동을 펼치는가 하면 귀족사회와 친분을 쌓으려 애썼다. 다이애나의 친정 스펜서가와도 인연이 깊어 다이애나의 부친은 임종 당시 그에게 가족을 보살펴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정계에 뿌린 돈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끝내 영국 시민권을 손에 쥐지 못했다.
다이애나와 도디의 만남을 주선한 것은 그였다. 다이애나는 그의 일그러진 꿈을 이뤄줄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는 「비운의 왕세자비」를 며느리로 얻어 영국 사회의 거만함을 실컷 비웃어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아들의 시신을 고국 이집트에 묻지 않고 영국의 공동묘지에 장사지냈다. 그의 슬픔의 표현이자 영국 사회에 대한 항변으로 비쳐졌다. 하지만 동정도 잠시, 그는 다이애나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비난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음주상태에다 약물까지 복용한 것으로 드러난 사고차량의 운전사 앙리 폴은 그의 소유인 파리의 리츠호텔 보안요원이었기 때문이다.<이희정 기자>이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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