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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의 열차」 어제 발차/한국일보사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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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의 열차」 어제 발차/한국일보사 후원

입력
1997.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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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은 고난의 역사 잊지않았다” 감격/역광장 1천여 동포들 한맺힌 눈물/“연해주로 재이주 활기띨 것” 기대도【블라디보스토크=김동국 기자】 구소련 극동거주 한인들의 피맺힌 한이 서린 중앙아시아 타슈켄트까지의 강제이주길 8천㎞. 60년만에 그 통한의 노정을 쫓아가는 「회상의 열차」가 11일 밤 10시 블라디보스토크역을 출발, 대륙을 동서로 관통하는 열흘간의 대장정에 올랐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러시아연방고려인협회가 공동주최하고 한국일보사가 후원한 「회상의 열차」는 12일 하바로프스크를 거쳐 시베리아의 대평원을 건넌뒤 19일께 중앙아시아지역에 들어설 예정이다.

오랜만에 화창하게 갠 이날 블라디보스토크역 광장에는 연해주 주정부 관계자, 소수민족대표 등이 나와 장도를 축하해 주었다. 그러나 1천명 가까이 모인 이곳 한인동포들은 고난의 세월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듯 상기된 표정으로 말없이 출발의식을 지켜보았다.

1937년 타슈켄트로 강제이주됐다 56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 강일관(88)옹은 『그 옛날 고난의 역사를 고국이 결코 잊지않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고맙다』고 감격해하면서 『4남매중 3명을 사고와 질병으로 잃었을 만큼 당시 강제이주길은 말그대로 죽음의 길이었다』며 눈물을 떨구었다.

『특히 그해 11월 마지막 이주열차의 참상은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시베리아의 무서운 추위와 배고픔으로 열차가 달리는 도중에도 수없는 동포들이 쓰러져 철로변에 그대로 버려졌습니다』 옆에 있던 김해숙(85) 할머니도 말을 거들다 끝내 목이 메었다.

한인들의 연해주지역 이주는 조선조 홍경래란 이후인 1811년부터. 이후 한반도에 대기근이 든 1870년을 전후해 굶주린 동포들이 대거 러시아국경을 넘었다. 그러나 비교적 한인들에게 우호적이었던 러시아정부의 입장은 1917년 소비에트정권이 들어서면서 바뀌었다. 소수민족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여러차례 강제이주를 추진하려다 무산된뒤 스탈린치하인 1937년 마침내 일본을 위한 스파이행위를 할 우려가 있다고 뒤집어 씌워 강행했다. 이때 18만여명이 중앙아시아의 알마아타(현 카자흐스탄)와 타슈켄트(현 우즈베키스탄) 등지로 강제이주됐으며 이 과정에서 추위와 굶주림 등으로 4분의 1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곳 연해주의 고려인은 현재 2만6천명 가량. 80년대 이후 강제이주지에서 다시 돌아온 사람과 그 자손들이다. 기근과 폭정으로 자기 땅에서 쫓겨났던 러시아거주 한인들에게 이곳은 또다른 「고향」이었다.

러시아연방고려인협회 이 올레그 회장은 『고려인에게 연해주는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곳』이라며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갈수록 민족주의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어 강제이주 고려인과 후손들의 재이주가 더욱 활기를 띠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소련 고려인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60주년을 기념하는 「회상의 열차」에는 교수, 의사, 기업인 등 국내참가자와 재중동포, 러시아거주 고려인대표 등 90여명이 올랐다. 특히 러시아군 유일의 고려인장군인 차 블라디미르 코카서스지역군 부사령관과 지난해 서울에어쇼에 참가한 비행영웅 최 올레그, 작가 김 아나톨리, 인기가수 김 리나씨 등도 참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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